20200412 주일오전예배 설교(요한복음 20장 19-31절/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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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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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 https://youtu.be/GZspWJIHdDI
부활절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의심하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고 확신을 얻게 되는 도마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간 세상에서 계시면서 스스로 부활을 증거하고 자신의 몸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심
19절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안식일 후 첫날은 지금의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주일날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워서 문들을 닫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자기들도 붙들려 갈까봐 두려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고 있는데 제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벌벌 떨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까? 죄를 사하고,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고, 기도의 능력, 마귀를 대적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과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19, 21절). 주님의 이 말씀으로 제자들은 평강을 얻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 평강은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참 평강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내용이 누가복음 24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누가복음 24:36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자 37절에 보면 제자들은 놀라고 무서워하며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영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예수님의 혼령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38절에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그리고 39절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1-43절에는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고는 제자들이 생선 한 토막을 드리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이것은 영이 아니고 육체적으로 부활하셨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손과 발을 보여주고 생선을 잡수시면서 육체적 부활을 증거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던 바로 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신비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평강이 생기고 기쁨이 생겼습니다.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평강이 생기고 능력이 생겼습니다. 주님은 진정한 기쁨의 근원입니다. 이 세상에는 환난과 풍파가 많고 마귀 역사도 많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참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면 두려움, 한숨, 걱정,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만납니까? ‘예배’가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모여 예배드릴 때 주님이 그 자리에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도 참 평강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예수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
그 후 제자들은 도마를 만나서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25절). 도마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25절 끝에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도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의심이 많은 제자였습니다. 여러 제자들이 말하는데도 믿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왜 믿을 수 없었습니까? 24절에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도마는 은혜의 자리에 함께 있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을 때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주님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는 믿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모여 있었는데 왜 도마만 그곳에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나만 빠지지 않는지 조심하십시오. 시험에 빠지는 시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은혜의 자리에 빠지는 것입니다. 공동체 속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을 양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양떼를 떠난 양을 “길 잃은 양”이라고 합니다. 마귀는 성도를 미혹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공동체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함께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무식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혼자 떨어져 나가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강력하게 시험합니다. 성도들의 모이는 자리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도마는 함께 있지 못했기에 모두가 확신하는 때에 혼자 불신과 의심의 늪에 빠졌습니다.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일은 예배의 자리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20에서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는 주님도 그들 속에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함께 모인 자리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 공동체에 소속되고, 함께 모이는 것은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입니다.
3. 도마를 위해 다시 오신 주님
26절에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께서 여드레를 지나서 다시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이번에는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만약에 이번에도 도마가 함께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부활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행스럽게 이번에는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7절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의 의심하는 바를 해결해줍니다. 못 박힌 손을 보고, 창에 찔린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심방을 받은 후 도마는 변했습니다.
28절에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의 유명한 고백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던 도마가 믿음을 구체적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불신하고, 의심하고, 믿지 못하겠다고 하던 도마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나왔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을 뿐 아니라 그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도마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성격이 아주 분명한 사람입니다. 도마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한다든가, 믿지 않는 것을 믿는다고 한다든가,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도마는 자기가 확실히 믿을 때는 믿는다고 말했고, 의심이 생길 때는 믿지 못하겠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알지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의심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로 믿지 않으면서 믿는 것처럼 흉내만 내고 있다면 그것은 더 좋지 않습니다. 도마는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확실하게 깨달은 다음에는 참으로 믿었습니다. 도마의 의심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도전을 주기도 합니다.
도마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부활을 믿습니다. 확실히 믿습니다.’ 고백하고 증거했습니다. 이것은 도마의 신앙고백이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온 천하에 증거하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이런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확신이 있는 사람이 전도를 잘합니다. 자기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남에게 전하겠습니까? 도마처럼 믿음을 구하십시오. 예수님을 10년, 20년을 믿으면서도 아직도 부활에 확신이 없이, 부활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믿어야 하나 안 믿어야 하나, 의심하고 있으면 안될 일입니다. 우리는 죽은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 아닙니다. 부활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4. 도마보다 더 복된 우리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2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우리는 주님을 보지 못했지만 본 것처럼 믿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복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전서 1:8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그것입니다.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며,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됩니다. 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생명을 얻고 구원을 받습니다. 혹 부활에 대해서 의심이 생깁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안 믿어지는 것이 있습니까? 성경을 읽으십시오. 말씀을 듣고 배우십시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십시오.
부활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시시한 주제가 아닙니다. 만약 부활을 믿지 않으면,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그 사람의 믿음은 헛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7-18절에 보면 후메네오와 빌레도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렸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우리는 살아 계신 주님을 믿습니다. 부활은 참 신앙의 기초이며 핵심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환난과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믿음으로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좋은 신앙의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 하며 더욱 확신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혼자 고독한 신앙생활을 하며 의심과 갈등의 자리에 있지 않도록 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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