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0 주일오전예배 설교(잠언 15장 16-20절/행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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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05-1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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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하기를 소원합니다. 사람들이 노력하고 애쓰는 것은 좀 더 행복해지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모르고 있으며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의 조건을 물질적인 것에 두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나.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나, 고급 자동차를 타는 것이나, 큰 권세나 영화를 누리는 것 등을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다 좋은 것들입니다만 그것이 사람에게 행복이나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 왕은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져보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난 후에 말하기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것이다’ 하였고 쾌락을 가리켜서 ‘미친 짓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16절에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고 믿음으로 살면 거기에는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말씀으로 즐거워하는 자는 가산이 적어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는 크게 부하여도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없고 번뇌와 고통이 들어오게 됩니다. 전도서 5:10-11에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라고 했습니다.
행복은 물질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한 것 아니고 돈이 없다고 다 불행한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돈이 많아도 얼마든지 불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이 “내가 불행한 이유는 돈이 없고 가난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행복과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시편 23:1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9-10에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절대로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 자체가 사람의 고통이며 죄입니다. 예레미야 17:5-6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여러분, 만족과 행복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행복의 첫째 조건입니다. 부자도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행복합니다. 가난한 자도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
2. 서로 사랑하는 것
17절에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행복은 잘 먹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채소”는 값싸고 평범한 음식입니다. 그런 채소조차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가난한 집이라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그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진 소를 잡아먹고 사는 집이라도 식구들이 서로 미워하며 살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잠언 17:1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제육’은 고기반찬을 가리킵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게 사는 것이 고기반찬을 냉장고에 가득하게 쌓아두고 서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났다고 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분노가 가득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마귀의 역사가 있습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키고 다툼은 고통을 가져옵니다. 미움은 모든 좋은 것을 쫓아냅니다. 누구든지 그 마음속에 미움이 있으면 평안도, 기쁨도, 은혜도, 행복도 그 안에 거하지 못합니다. 불행의 원인은 미움입니다. 미움이 불행의 원인인데 그것을 모르고 자꾸 다른 것을 탓합니다. 미움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미워하며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행복은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사는 가정에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고, 둘째, 가족들끼리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잘되게 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3. 분을 참고 다투지 않는 것
18절에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살아도 살다보면 의견이 다른 것도 있고, 속상한 일도 있고, 화가 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분을 쉽게 내지 말라고 합니다. 부부 간에 단점을 고쳐 줄려고 하다가 다투는 일들이 많습니다. 서로에게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분을 내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의분도 있고, 정당한 분노도 있고, 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분노가 많습니다. 무슨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속이 상하여 분을 내게 됩니다. 억울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을 바로 잡으려고 분을 내기도 합니다. 자존심이 강하여 남을 이기고 굴복시키려고 분을 내기도 합니다. 성격이 불과 같아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습관적으로 분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지 간에 분을 쉽게 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분노는 자기 자신에게도 좌절과 실패를 가져다주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고통을 줍니다. 잠언 21:9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1:19에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이 말씀은 다투며 성내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말한 것입니다. 분노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 정신적으로 큰 고통이 따르게 되고, 움막에서 혼자 살면 육신적으로는 좀 불편하겠지만 마음은 편할 것입니다. 내가 분노하는 것이 이렇게 남에게 고통을 주며, 주변의 사람이 나의 분노를 이렇게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참고 노하기를 더디 하라고 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는 것이니 만큼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잠언 15:1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온유한 말로 분노를 쉬게 하고 풀어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행복은 저절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노력하는 것만큼 얻을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려고 결심하고 노력하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면 많은 시간 노력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분노를 이기려고 노력하십시오. 속상하고 화가 날 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지혜를 구하십시오.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고 노력하십시오. 노력하는 만큼 변화하게 되고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4. 정직하게 사는 것
19절에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아무 것도 안하고 먹고 놀기만 하면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행복은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남편은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데 부인은 춤이나 추러 다니고 사치와 허영만 일삼고 다닌다면 그 가정이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아내는 잘 살아보려고 애쓰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남편은 밤낮으로 술이나 마시고 도박이나 하러 다니고 놀기나 한다면 그 가정은 행복하기 힘들 것입니다. 노력하고 애쓰던 사람도 일할 맛이 나지 않습니다.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게으른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언 21:25에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싫어합니다. 자기 자신이 먹고 살 일도 안 한다는 말입니다. 일은 하지 않고 핑계만 댑니다. 길에 가면 사자가 있습니다. 뭐가 힘들고, 뭐가 어렵고, 뭐가 맘에 안 들고, 뭐 때문에 못하고 하면서 핑계만 대고 침상에서 굴러다니기만 합니다. 가족 중에 게으른 사람이 있으면 온 식구들이 속이 터지고 가족들의 고통이 말도 못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바빠서 돈을 쓸 시간도 없는데 게을러 가지고 노는 사람이 돈만 더 잘 씁니다. 예수님께서 한 달란트 맡은 종을 책망하시면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 그 자체입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앞길이 평안합니다. 부부가 한 가지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함께 마음과 힘을 모아서 부지런히 일하면 보람과 행복과 만족이 있을 것입니다.
5. 업신여기지 않는 것
20절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지혜로운 아들은 부모님을 즐겁게 합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부모님을 잘 공경하니 부모님이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반대로 미련한 자는 어머니를 업신여깁니다. 교만하여 자기가 제일 인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악을 행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른이 어른다워야 한다’ ‘부모가 부모다워야 한다’고 말하며 부모를 업신여깁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이유는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부모 뿐 아니라 가족이 서로 업신여기고 멸시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하려면 서로를 존중하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사람이 어릴 때는 자기 부모가 하늘처럼 위대해 보이고 세상에서 최고로 모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위대해 보이던 부모님이 실수도 많이 하고 약해보이고 초라해 보입니다. 자녀가 자라서 성인이 되면, 자식이 더 잘나고, 더 똑똑하고, 더 능력이 많게 됩니다. 그럴 때 자녀의 눈에는 부모가 자기만 못해 보이고, 맘에 안 드는 것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자녀가 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눈도 나빠져서 잘 보이지도 않고, 귀가 나빠져서 잘 듣지도 못하고, 기억력도 감퇴해서 잊어버리기도 잘하고, 힘이 없어서 일도 못하고, 주름살이 늘어서 아름다운 것도 다 사라지고, 병에도 잘 걸립니다.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잔소리를 많이 하십니다.
반면에 자식들은 젊고 힘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잘합니다. 공부도 더 많이 했습니다. 아는 것도 많습니다. 힘이 넘쳐납니다. 돈도 잘 법니다. 시대에 뒤지지 않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젊은이들입니다. 그렇게 되어도 부모님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늙고 병들고 돈 없고 힘없는 부모라고 해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부모님이 나를 낳아 주셨습니다. 그 부모님이 나에게 걸음마를 가르쳤습니다. 그 부모님이 나에게 이름 쓰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부모님이 나의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키우셨습니다. 내가 아무리 훌륭하고 잘났어도 부모님에게는 그저 자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잘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님 뿐 아니라 부부간에도 서로의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공경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7에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가족을 업신여기는 것은 자기가 불행해지는 길입니다. 아내를 멸시하거나 남편을 업신여기는 것은 미련한 일입니다. 형제와 이웃을 업신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면 내가 높아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오늘 말씀 위에 여러분 가정을 세워나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은 은혜 주셔서 행복이 가득한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하기를 소원합니다. 사람들이 노력하고 애쓰는 것은 좀 더 행복해지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모르고 있으며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의 조건을 물질적인 것에 두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나.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나, 고급 자동차를 타는 것이나, 큰 권세나 영화를 누리는 것 등을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다 좋은 것들입니다만 그것이 사람에게 행복이나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 왕은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져보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난 후에 말하기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것이다’ 하였고 쾌락을 가리켜서 ‘미친 짓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16절에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고 믿음으로 살면 거기에는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말씀으로 즐거워하는 자는 가산이 적어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는 크게 부하여도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없고 번뇌와 고통이 들어오게 됩니다. 전도서 5:10-11에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라고 했습니다.
행복은 물질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한 것 아니고 돈이 없다고 다 불행한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돈이 많아도 얼마든지 불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이 “내가 불행한 이유는 돈이 없고 가난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행복과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시편 23:1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9-10에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절대로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 자체가 사람의 고통이며 죄입니다. 예레미야 17:5-6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여러분, 만족과 행복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행복의 첫째 조건입니다. 부자도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행복합니다. 가난한 자도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
2. 서로 사랑하는 것
17절에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행복은 잘 먹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채소”는 값싸고 평범한 음식입니다. 그런 채소조차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가난한 집이라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그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진 소를 잡아먹고 사는 집이라도 식구들이 서로 미워하며 살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잠언 17:1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제육’은 고기반찬을 가리킵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게 사는 것이 고기반찬을 냉장고에 가득하게 쌓아두고 서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났다고 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분노가 가득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마귀의 역사가 있습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키고 다툼은 고통을 가져옵니다. 미움은 모든 좋은 것을 쫓아냅니다. 누구든지 그 마음속에 미움이 있으면 평안도, 기쁨도, 은혜도, 행복도 그 안에 거하지 못합니다. 불행의 원인은 미움입니다. 미움이 불행의 원인인데 그것을 모르고 자꾸 다른 것을 탓합니다. 미움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미워하며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행복은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사는 가정에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고, 둘째, 가족들끼리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잘되게 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3. 분을 참고 다투지 않는 것
18절에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살아도 살다보면 의견이 다른 것도 있고, 속상한 일도 있고, 화가 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분을 쉽게 내지 말라고 합니다. 부부 간에 단점을 고쳐 줄려고 하다가 다투는 일들이 많습니다. 서로에게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분을 내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의분도 있고, 정당한 분노도 있고, 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분노가 많습니다. 무슨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속이 상하여 분을 내게 됩니다. 억울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을 바로 잡으려고 분을 내기도 합니다. 자존심이 강하여 남을 이기고 굴복시키려고 분을 내기도 합니다. 성격이 불과 같아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습관적으로 분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지 간에 분을 쉽게 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분노는 자기 자신에게도 좌절과 실패를 가져다주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고통을 줍니다. 잠언 21:9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1:19에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이 말씀은 다투며 성내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말한 것입니다. 분노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 정신적으로 큰 고통이 따르게 되고, 움막에서 혼자 살면 육신적으로는 좀 불편하겠지만 마음은 편할 것입니다. 내가 분노하는 것이 이렇게 남에게 고통을 주며, 주변의 사람이 나의 분노를 이렇게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참고 노하기를 더디 하라고 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는 것이니 만큼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잠언 15:1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온유한 말로 분노를 쉬게 하고 풀어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행복은 저절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노력하는 것만큼 얻을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려고 결심하고 노력하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면 많은 시간 노력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분노를 이기려고 노력하십시오. 속상하고 화가 날 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지혜를 구하십시오.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고 노력하십시오. 노력하는 만큼 변화하게 되고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4. 정직하게 사는 것
19절에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아무 것도 안하고 먹고 놀기만 하면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행복은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남편은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데 부인은 춤이나 추러 다니고 사치와 허영만 일삼고 다닌다면 그 가정이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아내는 잘 살아보려고 애쓰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남편은 밤낮으로 술이나 마시고 도박이나 하러 다니고 놀기나 한다면 그 가정은 행복하기 힘들 것입니다. 노력하고 애쓰던 사람도 일할 맛이 나지 않습니다.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게으른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언 21:25에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싫어합니다. 자기 자신이 먹고 살 일도 안 한다는 말입니다. 일은 하지 않고 핑계만 댑니다. 길에 가면 사자가 있습니다. 뭐가 힘들고, 뭐가 어렵고, 뭐가 맘에 안 들고, 뭐 때문에 못하고 하면서 핑계만 대고 침상에서 굴러다니기만 합니다. 가족 중에 게으른 사람이 있으면 온 식구들이 속이 터지고 가족들의 고통이 말도 못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바빠서 돈을 쓸 시간도 없는데 게을러 가지고 노는 사람이 돈만 더 잘 씁니다. 예수님께서 한 달란트 맡은 종을 책망하시면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 그 자체입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앞길이 평안합니다. 부부가 한 가지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함께 마음과 힘을 모아서 부지런히 일하면 보람과 행복과 만족이 있을 것입니다.
5. 업신여기지 않는 것
20절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지혜로운 아들은 부모님을 즐겁게 합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부모님을 잘 공경하니 부모님이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반대로 미련한 자는 어머니를 업신여깁니다. 교만하여 자기가 제일 인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악을 행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른이 어른다워야 한다’ ‘부모가 부모다워야 한다’고 말하며 부모를 업신여깁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이유는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부모 뿐 아니라 가족이 서로 업신여기고 멸시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하려면 서로를 존중하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사람이 어릴 때는 자기 부모가 하늘처럼 위대해 보이고 세상에서 최고로 모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위대해 보이던 부모님이 실수도 많이 하고 약해보이고 초라해 보입니다. 자녀가 자라서 성인이 되면, 자식이 더 잘나고, 더 똑똑하고, 더 능력이 많게 됩니다. 그럴 때 자녀의 눈에는 부모가 자기만 못해 보이고, 맘에 안 드는 것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자녀가 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눈도 나빠져서 잘 보이지도 않고, 귀가 나빠져서 잘 듣지도 못하고, 기억력도 감퇴해서 잊어버리기도 잘하고, 힘이 없어서 일도 못하고, 주름살이 늘어서 아름다운 것도 다 사라지고, 병에도 잘 걸립니다.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잔소리를 많이 하십니다.
반면에 자식들은 젊고 힘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잘합니다. 공부도 더 많이 했습니다. 아는 것도 많습니다. 힘이 넘쳐납니다. 돈도 잘 법니다. 시대에 뒤지지 않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젊은이들입니다. 그렇게 되어도 부모님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늙고 병들고 돈 없고 힘없는 부모라고 해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부모님이 나를 낳아 주셨습니다. 그 부모님이 나에게 걸음마를 가르쳤습니다. 그 부모님이 나에게 이름 쓰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부모님이 나의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키우셨습니다. 내가 아무리 훌륭하고 잘났어도 부모님에게는 그저 자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잘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님 뿐 아니라 부부간에도 서로의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공경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7에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가족을 업신여기는 것은 자기가 불행해지는 길입니다. 아내를 멸시하거나 남편을 업신여기는 것은 미련한 일입니다. 형제와 이웃을 업신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면 내가 높아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오늘 말씀 위에 여러분 가정을 세워나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은 은혜 주셔서 행복이 가득한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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