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8 주일오전예배 설교(예레미야 5장 1절/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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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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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 https://youtu.be/VNKDNWHMcvo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유다 나라는 극도로 타락했습니다. 선지자, 제사장, 백성들, 할 것 없이 총체적으로 부패했습니다. 예레미야 5:30-31에 보면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백성들은 악한 지도자들에게 항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악을 좋게 여기고 따라갔습니다. 악한 지도자들 편들었습니다. 선지자, 제사장, 백성들, 모두가 사탄의 조종에 놀아났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습을 보면서 무섭고 놀라운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너무나 비슷합니다. 종교가 타락하고 나라의 지도자들이 부패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다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70년 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비참한 결과를 면하게 하려고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1.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찾으시는 것은 예루살렘을 용서하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한 사람을 전체와 비교할 때 보잘 것이 없어 보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한 다수보다 믿음으로 사는 소수를 원하십니다. 1절에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찾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예루살렘 성을 용서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돔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을 찾다가 없어서 심판했는데, 예루살렘에는 그보다 훨씬 적은 의인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용서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교훈은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나 한 사람 잘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렇게 말하면서 선하게 살기를 포기하고 바르게살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경우에 함께 무너지고 함께 타락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 혼자 해봐야 별 수 있나’라는 회의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나 혼자 그러다가 나만 손해 본다’는 피해의식도 한 몫 합니다. 또 반대로 ‘나 한 사람 잘못하고 죄짓는다고 뭐가 나빠지겠는가?’는 생각도 문제입니다. ‘나 한 사람 적당히 법을 어기고 적당히 살아도 괜찮겠지’라고 하면서 타협하고 죄짓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 한사람 예배 빠지고, 나 한 사람 기도 안 해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다 잘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전체를 이룹니다. 여러분은 이 나라 백성들이고, 교회 구성원들입니다. 참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나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다.’ 이런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겸손도 아니고 믿음도 아닙니다.
더 나아가 한 사람은 전체에 영향을 끼칩니다. 아마도 예루살렘 사람들도 모두 다 ‘나 하나쯤이야’라고 하면서 적당히 타협하면서 죄를 짓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만약 예루살렘에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 한 사람만 있었어도 예루살렘은 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삶은 백성 전체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성경에 그런 예는 많습니다. 악한 바로 왕 한 사람 때문에 애굽 전체가 망합니다. 아간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하고 이스라엘 전체가 고통을 당했습니다. 또한 요나 한 사람 때문에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풍랑을 만나 얼마나 큰 고생을 했습니까? 반면에 요셉 한 사람 때문에 7년 흉년으로 다 죽게 된 야곱의 집안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룻 한 사람의 신앙적인 결단과 희생은 나오미의 가정을 살렸습니다.
로마서 5:19에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 한 사람이 순종치 않고 범죄함으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온 인류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순종하므로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 한 사람의 삶은 나 한사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바르게 살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한 사람이 될 수 없을까요? 주님께서 기대를 걸고, 소망을 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됩시다. ‘다 썩었지만 그래도 저 사람이 있으니까?’라고 하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한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유다 나라가 망한 것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나 과학이나 교육이 잘못되어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는 의로운 한 사람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고, 대단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고,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졌다고 해도, 그런 것들 가지고 그 나라와 사회를 지킬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혹 실수하고 넘어지면 회개하고 일어서서 바로 서가는 그 사람이 세상을 지키는 진정한 힘입니다. 그 한 사람이 세상을 살릴 수 있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혼자라도 정직합시다. 나 혼자라도 정의를 세웁시다.
2. 어떤 사람을 찾으십니까?
하나님은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정의”는 하나님 앞에서 공평하고 의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 중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정직하게 사는 사람, 양심적으로 장사하는 사람, 커닝하지 않는 학생, 양심을 지키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진실하고 참된 것이 진리입니다. 정직하고 살려고 애쓰는 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을 찾으시려는 것입니다. 잠언 21:2-3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제사보다 하나님께서 더 기쁘게 여기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이 아니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지식적으로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도 아니고 말 잘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율법으로 교육을 받습니다. 12살이 되기 전에 율법을 다 배워서 율법에 통달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 때 그들은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7:4에 보면 성전을 가리켜 여호와의 전이라고 하는 그 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선지자들이 하는 말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전만을 거룩하게 여기고, 성전에만 나오면 안전할 줄 알고,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외식하고 있는 자들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7:9-10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이방신들을 섬기고, 참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는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7:5-7에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한마디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행동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가지 않고 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으면” 이라는 말씀을 통해 예루살렘이 얼마나 패역한지를 보여주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에 정의를 구하며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시고 한탄하신 것입니다.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에게서 도무지 정직함을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59:14에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나타나지 못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거리마다 정의가 강같이 흐르기를 기대하셨는데 완전히 메말랐습니다. 의로운 사람들이 넘치기를 원하셨는데 불의하고 악한 사람들만 많았습니다.
3. 어디에서 찾으십니까?
그 한 사람을 바벨론이나 앗수르나 이집트에서 찾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한 나라인 유다에서 찾으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거리에서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성전에서 매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일 년에 3번씩 절기를 지켰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눈이 집중된 곳이고, 하나님의 마음이 담아진 곳이고, 하나님께서 주야로 그 백성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진 성이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은 온 백성이 공의로운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왕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일반 도시가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거룩한 도성이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서 그 한 사람을 찾기 원합니다. 우리들의 가정생활은 어떻습니까? 믿는 사람들의 직장생활은 어떻습니까? 믿는 사람들만 사용하는 예배당 주차장과 식당에서의 우리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들 중에서 그 한 사람은 과연 있을까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1절에서 강조하는 또 하나는 ‘거리’와 ‘넓은 거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안에서는 엄숙하게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지만 성전 밖으로 나오면 불신자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직분자들이 많고, 성도들이 많이 있지만 교회 밖으로 나가서 생활 현장을 살펴보면 신자답게 바르게 사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당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예배당 밖에서, 길거리에서,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기도하는 자리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찾았습니다. 예배드릴 때는 다 성자 같고 기도할 때는 다 천사 같습니다. 그러나 거리에서는 어떻습니까? 직장에서는 어떻습니까? 장사할 때는 어떻습니까?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모든 거민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다 살피셨습니다. 그들의 삶을 지켜보셨습니다. 어느 거리에서 무엇을 하는지, 어느 길목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자세히 지켜보시면서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찾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죄를 짓는 사람은 더 많은데 회개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부정을 저지르고, 불법을 행하면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엎어버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면서 더 많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윤리도 도덕도 양심도 다 무너진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한 나라나 민족을 멸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의인이 있는가 여부입니다. 아무리 죄악이 관영할지라도 의인 한 사람만 있으면 그 민족은 용서해주십니다. 이 나라와 이 사회가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 있어도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것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님 앞에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원하시는 그런 사람이 우리 가운데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그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면 나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복 받을 수 있고 나 한 사람 때문에 나라가 복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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