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8 수요예배 설교(열왕기상 18장 16-40절/엘리야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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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07-08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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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왕때 이스라엘에 3년 6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았다. 말이 3년 6개월이지 얼마나 긴 시간인가? 왕이 직접 물의 근원을 찾으려고 돌아다닌 형편이었으니 일반 백성들은 그 고통이 말할수 없을만큼 심각했다.
그러나 아합은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았다.
3년 쯤 지난때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셔서 아합왕에게 가라고 하시고 기적을 행하게 하셨다.
17절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아합이 엘리야를 보자마자 기근의 이유가 엘리야에게 있다고 따지면서 책망했다.
18절
엘리야 선지자가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너 때문이다! 너의 죄 때문에 이 괴로움이 임한 것이다 라고 지적해주었다.
여호와의 명령을 버린 것과 바알들을 따른 것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것이 원인이라고 알려주었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고통 당하면서 고통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남에게서 찾고 남탓만 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조상 탓을 하고, 모두 남 때문이라고 한다.
예레미야애가 3:39-40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고난 당할때 다른 이유도 있기는 하지만 자기 죄때문에 벌받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죄를 찾아 회개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자세이다.
아합왕은 이것을 몰랐다. 무엇때문에 고난이 임했는지, 온 이스라엘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모르고 있있다.
오늘날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우리가 우리의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한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서 믿음에 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19절
엘리야 선지자가 제안을 했다. 우상숭배하는 선지자들을 다 모아서 갈멜산으로 데리고 나와달라고 했다.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이다. 그들을 다 모아서 갈멜산으로 나오면 서로 기도해서 어느 신이 진짜 신인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20절
아합왕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21절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대결이 앞서서 엘리야 선지자가 백성들을 책망했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지, 바알이 참 신인지 알지 못하고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을 섬기던 백성들이 아합왕의 미혹에 빠져서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선명하게 태도를 밝히라고 했다.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선이냐 악이냐, 말씀이냐 아니냐 정확하게 선택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신앙생활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이 중간에 서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진리와 비진리 사이에 선다. 사람들은 중간에 서면 쉽고 편하다고 착각을 한다. 양쪽 모두에게서 이익을 볼 것이라고 착각한다. 사실 중간이 가장 힘들다. 양쪽 눈치를 다 봐야 한다. 손해가 가장 많다. 양쪽 다 듣고 따라가다가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다.
오늘날도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하나님과 미신 사이에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믿는 것도 아니고 안믿는 것도 아니고 어중간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유익만 취하고 손해는 절대 안보겠다는 태도를 가진다.
하나님은 분명한 자세를 요구하신다. 하나님만 섬기고 우상을 버리라고 하신다. 우상을 만들지도 절하지도 섬기지도 말라고 하신다. 우상을 다 부수어 제거하라고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엘리야의 꾸중에 한 사람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도 정확하게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22절
엘리야 선지자는 홀로 남았다. 그러나 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모두 850명이다. 숫적으로만 보면 기가 죽을 상황이다. 내가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수백명이 달려들어서 잘못됐다고 공격당하면 기가 막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는 850명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담대하게 선한 싸움을 하고 있다. 참으로 귀한 능력의 사람이다.
엘리야 선지자와 같이 혼자서라도 믿음을 지켜야 한다. 혼자서라도 의의 길을 가야 한다. 혼자서라도 하나님을 섬기고 바른 신앙을 지켜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기 때문이다. 바알 따라가면 출세하고 인정받고 성공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알 따라가지 않으니 목숨 부지 하기 어렵고 고생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혼자서 싸우고 있다.
불이 내려오고 안내려오고는 둘째 문제이고 이런 믿음을 가진 것 자체가 벌써 승리한 것이다. 이런 자세로 목숨 걸고 믿음 지키는 정신을 가진 것이 이미 이긴 것이다.
코로나가 아무리 와도, 우상숭배자가 주변에 아무리 많아도, 왕과 왕비가 우상숭배자의 편이라고 해도, 자기 주변에 아무도 없어도 하나님이 계신다. 엘리야는 굽히지 않고 기죽지 않고 주춤거리지 않고 겁내지 않고 담대하게 믿음을 지켰다.
불이 내려 승리한 것도 대단하지만 불 내리기 전에 이 믿음으로 대항한 것이 참으로 대견하다. 우리도 이런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말세에 이런 담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생명 걸고 믿음을 지키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면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것이다. 희생과 고생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야 선지자는 이 길을 갔다. 엘리야 선지자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친구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셔서 승리하게 하시고 위대한 승리의 모습을 우리에게까지 보여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불이 내린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불을 내려주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엘리야는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죽으면 실패한 것인가? 죽어도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꼭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서 이기게 하실때도 있고 기적을 베풀어주시지 않고 죽게 하실수도 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는 것 자체가 승리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이런 믿음을 지켰다. 느부갓네살이 큰 우상을 만들어놓고 모든 신하들에게 절하라고 하고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넣겠다고 한다. 그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께서 풀무불과 왕의 손에서 건지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믿음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줄 믿는 믿음을 가졌다. 반드시 구원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건져주시지 않아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순교의 믿음을 가졌다. 그런 각오로 믿음을 지켰다.
엘리야 선지자도 이 믿음을 가진 것이다. 엘리야가 믿음을 갖고 확신한 가운데 맞서 싸우고 있지만 불이 내려오지 않았어도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승리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말씀 지키다가 돈 못벌고 쫓겨나고 실패하는 것 같아도 이것이 승리이다. 말씀 지키지 않다가 돈 많이 벌고 승승장구 해도 그것은 결국 실패이다.
23절
송아지 한마리를 가져와서 나무에 올려놓고 불은 놓지 말고 기도해서 불이 내려오면 참 신으로 인정하자고 했다. 대결이 벌어진다.
25-29절
바알 선지자들이 먼저 기도한다.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이여 응답하소서 기도했다.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자 제단 주위에 뛰면서 기도했다. 정오까지 왔는데도 기도응답이 없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한다. 신이 묵상하는지 잠깐 나갔는지 길가고 있는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확인해봐라!
그러자 바알 선지자들은 큰 소리로 부르고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몸을 상하게 했다.
아침부터 시작해서 저녁 소제 드릴때까지 온종일 부르짖었다. 그러나 아무 응답도 소리도 없었다.
우상은 신이 아니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물건이고 생명없는 죽은 것이다. 성경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생명 없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런 우상에게 기도한다한들 누가 응답하겠나?
30절
엘리야 선지자 차례가 되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했다. 오랫동안 우상숭배하느라 여호와의 제단이 다 무너져 있었다. 제단을 다시 수축한 것은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다. 예배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예배가 무너지면 신앙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도안 제단이 무너져 있었다. 열두 개의 돌을 가져다가 그 제단을 다시 쌓고 도랑을 파고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12통의 물을 길어다가 제단과 나무에 부었다. 얼마나 부었는지 제단으로 물이 흐르고 도랑에 물이 가득찼다고 했다.
불 붙기 힘들 정도로 물을 부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불이 물들을 다 말리고 다 태워주실 것을 믿었다. 일부로 어렵게 만들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서 모든 백성들이 분명히 알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다. 새벽에 깊은 곳에는 물고기가 없다. 일부로 고기 없는 곳에서 고기 잡게 하신 것이다. 착각하지 않게 해주신 것이다.
저녁 소제 드릴때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했다. 크게 소리 지르지도 않고 춤을 추지도 않고 몸을 상하게 하지도 않고 오랫동안 길게 기도하지도 않았다. 몇마디 기도했다.
저녁 소제 드릴때 기도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했다. 살아계신 언약의 하나님, 약속대로 반드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해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왜 이런 기도를 했냐면 인정받기 위함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미혹받아서 분별을 못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어도 듣지도 믿지도 않으니까 확실하게 알게 하려고 이런 기도를 한 것이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참 종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미혹받아 하나님을 떠나고 죄에 빠지고 우상에 기울여져 있는 그들의 마음을 다 돌려서 하나님께 돌아오고 믿음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38절
기도했더니 놀랍게도 불이 내려왔다. 실제로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번제물을 다 태우고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이 완전히 마르게 했다.
굉장한 기적이 일어났다.
850명 우상 선지자들이 다 서 있고,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고, 아합 왕도 와있는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살랐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가 드러났다. 참 기적이 베풀어졌다.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엘리야가 그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에 응답해주신 것이다.
39절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로다 하면서 백성들이 다 돌아왔다.
40절
바알 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다 잡아 죽였다.
사람을 죽였는데 잘했는가 잘못했는가? 너무 잔인한가? 잘한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종이 그럴수 있는가? 너무 잔인하다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엘리야가 개인 감정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미혹하는 자들을 죽이라고 했다.
사울이 아각왕을 죽이지 않자 하나님이 책망하셨고 사무엘이 직접 죽였다.
엘리야가 우상 선지자들을 죽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히 믿고 아무리 환난과 미혹이 많은 환경속에서도 중간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우리의 태도를 분명히 하여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겠다.
아합왕때 이스라엘에 3년 6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았다. 말이 3년 6개월이지 얼마나 긴 시간인가? 왕이 직접 물의 근원을 찾으려고 돌아다닌 형편이었으니 일반 백성들은 그 고통이 말할수 없을만큼 심각했다.
그러나 아합은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았다.
3년 쯤 지난때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셔서 아합왕에게 가라고 하시고 기적을 행하게 하셨다.
17절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아합이 엘리야를 보자마자 기근의 이유가 엘리야에게 있다고 따지면서 책망했다.
18절
엘리야 선지자가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너 때문이다! 너의 죄 때문에 이 괴로움이 임한 것이다 라고 지적해주었다.
여호와의 명령을 버린 것과 바알들을 따른 것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것이 원인이라고 알려주었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고통 당하면서 고통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남에게서 찾고 남탓만 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조상 탓을 하고, 모두 남 때문이라고 한다.
예레미야애가 3:39-40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고난 당할때 다른 이유도 있기는 하지만 자기 죄때문에 벌받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죄를 찾아 회개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자세이다.
아합왕은 이것을 몰랐다. 무엇때문에 고난이 임했는지, 온 이스라엘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모르고 있있다.
오늘날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우리가 우리의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한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서 믿음에 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19절
엘리야 선지자가 제안을 했다. 우상숭배하는 선지자들을 다 모아서 갈멜산으로 데리고 나와달라고 했다.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이다. 그들을 다 모아서 갈멜산으로 나오면 서로 기도해서 어느 신이 진짜 신인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20절
아합왕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21절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대결이 앞서서 엘리야 선지자가 백성들을 책망했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지, 바알이 참 신인지 알지 못하고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을 섬기던 백성들이 아합왕의 미혹에 빠져서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선명하게 태도를 밝히라고 했다.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선이냐 악이냐, 말씀이냐 아니냐 정확하게 선택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신앙생활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이 중간에 서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진리와 비진리 사이에 선다. 사람들은 중간에 서면 쉽고 편하다고 착각을 한다. 양쪽 모두에게서 이익을 볼 것이라고 착각한다. 사실 중간이 가장 힘들다. 양쪽 눈치를 다 봐야 한다. 손해가 가장 많다. 양쪽 다 듣고 따라가다가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다.
오늘날도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하나님과 미신 사이에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믿는 것도 아니고 안믿는 것도 아니고 어중간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유익만 취하고 손해는 절대 안보겠다는 태도를 가진다.
하나님은 분명한 자세를 요구하신다. 하나님만 섬기고 우상을 버리라고 하신다. 우상을 만들지도 절하지도 섬기지도 말라고 하신다. 우상을 다 부수어 제거하라고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엘리야의 꾸중에 한 사람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도 정확하게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22절
엘리야 선지자는 홀로 남았다. 그러나 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모두 850명이다. 숫적으로만 보면 기가 죽을 상황이다. 내가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수백명이 달려들어서 잘못됐다고 공격당하면 기가 막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는 850명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담대하게 선한 싸움을 하고 있다. 참으로 귀한 능력의 사람이다.
엘리야 선지자와 같이 혼자서라도 믿음을 지켜야 한다. 혼자서라도 의의 길을 가야 한다. 혼자서라도 하나님을 섬기고 바른 신앙을 지켜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기 때문이다. 바알 따라가면 출세하고 인정받고 성공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알 따라가지 않으니 목숨 부지 하기 어렵고 고생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혼자서 싸우고 있다.
불이 내려오고 안내려오고는 둘째 문제이고 이런 믿음을 가진 것 자체가 벌써 승리한 것이다. 이런 자세로 목숨 걸고 믿음 지키는 정신을 가진 것이 이미 이긴 것이다.
코로나가 아무리 와도, 우상숭배자가 주변에 아무리 많아도, 왕과 왕비가 우상숭배자의 편이라고 해도, 자기 주변에 아무도 없어도 하나님이 계신다. 엘리야는 굽히지 않고 기죽지 않고 주춤거리지 않고 겁내지 않고 담대하게 믿음을 지켰다.
불이 내려 승리한 것도 대단하지만 불 내리기 전에 이 믿음으로 대항한 것이 참으로 대견하다. 우리도 이런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말세에 이런 담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생명 걸고 믿음을 지키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면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것이다. 희생과 고생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야 선지자는 이 길을 갔다. 엘리야 선지자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친구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셔서 승리하게 하시고 위대한 승리의 모습을 우리에게까지 보여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불이 내린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불을 내려주시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엘리야는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죽으면 실패한 것인가? 죽어도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꼭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서 이기게 하실때도 있고 기적을 베풀어주시지 않고 죽게 하실수도 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는 것 자체가 승리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이런 믿음을 지켰다. 느부갓네살이 큰 우상을 만들어놓고 모든 신하들에게 절하라고 하고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넣겠다고 한다. 그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께서 풀무불과 왕의 손에서 건지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믿음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줄 믿는 믿음을 가졌다. 반드시 구원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건져주시지 않아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순교의 믿음을 가졌다. 그런 각오로 믿음을 지켰다.
엘리야 선지자도 이 믿음을 가진 것이다. 엘리야가 믿음을 갖고 확신한 가운데 맞서 싸우고 있지만 불이 내려오지 않았어도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승리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말씀 지키다가 돈 못벌고 쫓겨나고 실패하는 것 같아도 이것이 승리이다. 말씀 지키지 않다가 돈 많이 벌고 승승장구 해도 그것은 결국 실패이다.
23절
송아지 한마리를 가져와서 나무에 올려놓고 불은 놓지 말고 기도해서 불이 내려오면 참 신으로 인정하자고 했다. 대결이 벌어진다.
25-29절
바알 선지자들이 먼저 기도한다.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이여 응답하소서 기도했다.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자 제단 주위에 뛰면서 기도했다. 정오까지 왔는데도 기도응답이 없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한다. 신이 묵상하는지 잠깐 나갔는지 길가고 있는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확인해봐라!
그러자 바알 선지자들은 큰 소리로 부르고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몸을 상하게 했다.
아침부터 시작해서 저녁 소제 드릴때까지 온종일 부르짖었다. 그러나 아무 응답도 소리도 없었다.
우상은 신이 아니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물건이고 생명없는 죽은 것이다. 성경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생명 없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런 우상에게 기도한다한들 누가 응답하겠나?
30절
엘리야 선지자 차례가 되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했다. 오랫동안 우상숭배하느라 여호와의 제단이 다 무너져 있었다. 제단을 다시 수축한 것은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다. 예배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예배가 무너지면 신앙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도안 제단이 무너져 있었다. 열두 개의 돌을 가져다가 그 제단을 다시 쌓고 도랑을 파고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12통의 물을 길어다가 제단과 나무에 부었다. 얼마나 부었는지 제단으로 물이 흐르고 도랑에 물이 가득찼다고 했다.
불 붙기 힘들 정도로 물을 부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불이 물들을 다 말리고 다 태워주실 것을 믿었다. 일부로 어렵게 만들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서 모든 백성들이 분명히 알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다. 새벽에 깊은 곳에는 물고기가 없다. 일부로 고기 없는 곳에서 고기 잡게 하신 것이다. 착각하지 않게 해주신 것이다.
저녁 소제 드릴때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했다. 크게 소리 지르지도 않고 춤을 추지도 않고 몸을 상하게 하지도 않고 오랫동안 길게 기도하지도 않았다. 몇마디 기도했다.
저녁 소제 드릴때 기도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했다. 살아계신 언약의 하나님, 약속대로 반드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해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왜 이런 기도를 했냐면 인정받기 위함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미혹받아서 분별을 못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어도 듣지도 믿지도 않으니까 확실하게 알게 하려고 이런 기도를 한 것이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참 종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미혹받아 하나님을 떠나고 죄에 빠지고 우상에 기울여져 있는 그들의 마음을 다 돌려서 하나님께 돌아오고 믿음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38절
기도했더니 놀랍게도 불이 내려왔다. 실제로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번제물을 다 태우고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이 완전히 마르게 했다.
굉장한 기적이 일어났다.
850명 우상 선지자들이 다 서 있고,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고, 아합 왕도 와있는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살랐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가 드러났다. 참 기적이 베풀어졌다.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엘리야가 그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에 응답해주신 것이다.
39절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로다 하면서 백성들이 다 돌아왔다.
40절
바알 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다 잡아 죽였다.
사람을 죽였는데 잘했는가 잘못했는가? 너무 잔인한가? 잘한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종이 그럴수 있는가? 너무 잔인하다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엘리야가 개인 감정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미혹하는 자들을 죽이라고 했다.
사울이 아각왕을 죽이지 않자 하나님이 책망하셨고 사무엘이 직접 죽였다.
엘리야가 우상 선지자들을 죽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히 믿고 아무리 환난과 미혹이 많은 환경속에서도 중간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우리의 태도를 분명히 하여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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