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2 주일오전예배 설교(마태복음 6장 25-34절/염려를 극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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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07-12 15:39
조회1,7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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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한 평생 염려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마 염려 없이 살아가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밤잠을 자지 못하고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합니다. 가장 많이 하는 염려가 의식주에 관한 것 즉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염려입니다. 염려는 습관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염려는 하면 할수록 염려가 많아집니다. 염려가 어떤 것인지 살피고 극복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염려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염려란 여러 가지로 마음을 쓰며 걱정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말로는 근심이라고도 하고 걱정이라고도 합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염려가 하찮은 것이고 염려해도 괜찮은 것이라면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첫째, 염려는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염려로는 아무 것도 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염려는 무익하며 쓸데없는 것이라고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여기서 “키”는 신장의 길이나 또는 생명의 길이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염려한다고 키가 자랍니까? 염려한다고 사람의 목숨이 연장되거나 수명이 늘어납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염려한다고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염려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전혀 쓸모없는 염려에 사로잡혀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둘째, 염려는 유익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고 해를 주는 것입니다. 잠언 15:13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7:22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염려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고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7:10에 보면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염려는 시간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염려는 힘을 소모하게 만듭니다. 염려는 육신의 건강을 해치고 정신을 파괴합니다. 질병 중에 염려, 근심,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생기는 질병이 아주 많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아주 나쁜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짜 문제는 염려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셋째, 염려는 믿음으로 사는 모습이 아닙니다. 30절에 보면 염려하는 자들을 향하여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염려는 불신자들의 생활 모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염려는 성도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염려하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의 꼬리를 물고 다가오는 수많은 생각들의 번민 속에서 잠을 못 이루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전혀 근거도 없고 상관도 없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신뢰하며 살아야 할 성도들이 염려로 인하여 마음이 나누어지고 갈라지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넷째. 염려는 모든 면에서 해로운 것이지만 가장 해로운 것은 신앙에 손상을 입히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가 결실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3:22에 보면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염려는 신앙의 적입니다. 마귀는 염려꺼리를 줘서 우리 믿음을 약화시킵니다. 염려하면 할수록 마음이 흔들리고 신앙이 약해집니다. 염려하면 할수록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염려는 하면 할수록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염려는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은혜 받지 못하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7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모두 주님께 맡기십시오. 빌립보서 4:6에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염려는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염려가 생길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합시다. 어떤 환경, 어떤 문제 앞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2. 아버지께서 있어야 할 줄을 아심
32절에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대부분 염려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금 나의 사정을 잘 모르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고,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고 계신다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8에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야 할 것을 어린아이 자신이 잘 압니까, 부모가 정확하게 압니까? 부모가 더 정확하게 압니다. 밥을 먹을 때인지, 잠을 잘 때인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부모가 훨씬 더 잘 알고 있습니다.
3.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한 것을 주심
하나님께서 우리의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25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우리에게 목숨을 주시고 우리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몸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의복이나 음식을 왜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26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새가 씨 뿌리는 것 보셨습니까? 새가 낫을 들고 추수하는 것 보셨습니까? 보잘것없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기르시는데 우리들을 왜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28-30절에는 의복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백합화는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안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자라게 하시고 입히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 하나까지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입히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독생자를 통해 구원해준 하나님의 자녀들을 왜 돌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염려는 물질의 문제가 아니고 믿음의 문제입니다. 큰 믿음을 가지고 염려를 물리칩시다.
4.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세상 것에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이 땅에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염려하며 사는 사람들이 의식주가 충족되면 만족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구는 계속 늘어갑니다. 더 좋은 것을 먹고 싶어서 욕심을 내고, 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맛 집을 찾아다닙니다. 더 좋은 명품 옷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욕구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것들로 인해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세상 것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진 곳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34절에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일 일을 미리 끌어다가 염려하느라고 오늘을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일이 되면 또 그 다음날을 염려합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는 말씀은 그날그날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한 날 일하느라고 괴로움 당하면서 사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내일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다. 하루를 하루답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일 일은 하나님께서 또 내일 가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사람들은 한 평생 염려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마 염려 없이 살아가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밤잠을 자지 못하고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합니다. 가장 많이 하는 염려가 의식주에 관한 것 즉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염려입니다. 염려는 습관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염려는 하면 할수록 염려가 많아집니다. 염려가 어떤 것인지 살피고 극복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염려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염려란 여러 가지로 마음을 쓰며 걱정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말로는 근심이라고도 하고 걱정이라고도 합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염려가 하찮은 것이고 염려해도 괜찮은 것이라면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첫째, 염려는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염려로는 아무 것도 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염려는 무익하며 쓸데없는 것이라고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여기서 “키”는 신장의 길이나 또는 생명의 길이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염려한다고 키가 자랍니까? 염려한다고 사람의 목숨이 연장되거나 수명이 늘어납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염려한다고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염려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전혀 쓸모없는 염려에 사로잡혀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둘째, 염려는 유익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고 해를 주는 것입니다. 잠언 15:13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7:22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염려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고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7:10에 보면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염려는 시간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염려는 힘을 소모하게 만듭니다. 염려는 육신의 건강을 해치고 정신을 파괴합니다. 질병 중에 염려, 근심,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생기는 질병이 아주 많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아주 나쁜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짜 문제는 염려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셋째, 염려는 믿음으로 사는 모습이 아닙니다. 30절에 보면 염려하는 자들을 향하여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염려는 불신자들의 생활 모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염려는 성도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염려하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의 꼬리를 물고 다가오는 수많은 생각들의 번민 속에서 잠을 못 이루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전혀 근거도 없고 상관도 없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신뢰하며 살아야 할 성도들이 염려로 인하여 마음이 나누어지고 갈라지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넷째. 염려는 모든 면에서 해로운 것이지만 가장 해로운 것은 신앙에 손상을 입히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가 결실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3:22에 보면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염려는 신앙의 적입니다. 마귀는 염려꺼리를 줘서 우리 믿음을 약화시킵니다. 염려하면 할수록 마음이 흔들리고 신앙이 약해집니다. 염려하면 할수록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염려는 하면 할수록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염려는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은혜 받지 못하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7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모두 주님께 맡기십시오. 빌립보서 4:6에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염려는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염려가 생길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합시다. 어떤 환경, 어떤 문제 앞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2. 아버지께서 있어야 할 줄을 아심
32절에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대부분 염려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금 나의 사정을 잘 모르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고,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고 계신다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8에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야 할 것을 어린아이 자신이 잘 압니까, 부모가 정확하게 압니까? 부모가 더 정확하게 압니다. 밥을 먹을 때인지, 잠을 잘 때인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부모가 훨씬 더 잘 알고 있습니다.
3.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한 것을 주심
하나님께서 우리의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25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우리에게 목숨을 주시고 우리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몸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의복이나 음식을 왜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26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새가 씨 뿌리는 것 보셨습니까? 새가 낫을 들고 추수하는 것 보셨습니까? 보잘것없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기르시는데 우리들을 왜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28-30절에는 의복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백합화는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안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자라게 하시고 입히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 하나까지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입히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독생자를 통해 구원해준 하나님의 자녀들을 왜 돌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염려는 물질의 문제가 아니고 믿음의 문제입니다. 큰 믿음을 가지고 염려를 물리칩시다.
4.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세상 것에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이 땅에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염려하며 사는 사람들이 의식주가 충족되면 만족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구는 계속 늘어갑니다. 더 좋은 것을 먹고 싶어서 욕심을 내고, 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맛 집을 찾아다닙니다. 더 좋은 명품 옷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욕구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것들로 인해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세상 것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진 곳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34절에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일 일을 미리 끌어다가 염려하느라고 오늘을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일이 되면 또 그 다음날을 염려합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는 말씀은 그날그날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한 날 일하느라고 괴로움 당하면서 사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내일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다. 하루를 하루답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일 일은 하나님께서 또 내일 가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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