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5 수요예배 설교(열왕기상 19장 1-18절/엘리야를 회복시킨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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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0-07-1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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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아합왕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기적을 체험했다.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함으로 3년 6개월 만에 비가 오는 은혜를 맛보았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들을 직접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믿음에 서지 못하고 아내 이세벨에게 아부하며 살아간다. 참 불쌍하고 믿음없는 모습이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죽였으니 악한 이세벨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2절
이세벨은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 내일 이맘때 반드시 죽이겠다고 맹세한다. 대단한 각오로 죽이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악의 끈질긴 모습이다. 이쯤 되면 아합과 이세벨이 손들고 항복하는 것이 옳은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목격했기에 회개해야 할텐데 끝까지 발악하고 있다.
3절
이 모습에 엘리야가 낙심하고 만다. 아무리 해도 발악하고 회개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선한 사람 엘리야가 지치고 낙담하게 되었다.
이세벨의 협박을 받고 엘리야는 도망을 친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다가, 믿음의 선한 싸움 싸우다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달아나버린다. 이것이 마귀의 의도요 역사이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힘들면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가 많으면 낙심하고 도망하는 사람이 있다.
4절
엘리야는 이세벨의 군대가 잡을수 없을만큼 멀리 달아나고 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는 선지자였다. 그런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남유다로 도망하고, 최남단 브엘세바까지 도망을 했다. 그리고 하룻길을 광야로 더 들어갔다. 그곳에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치고,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힘들어서 낙담하는 경우가 있다. 현실이 너무 힘들고 평안하지 못할때, 하는일 마다 꼬이고 자꾸 어려워져 갈때 그래서 견딜수 없는 심적 고통과 두려움이 닥쳐올때 답답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있다.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안팎으로 스트레스만 쌓인다.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마음의 짐은 점점 무거워진다. 이럴때 지치고 낙심하고 도망치고 싶을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절대 잘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생활이 아니다. 잘못된 것이다.
엘리야도 이랬는데 나도 그래도 되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기도는 했는데 내용이 잘못되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여달라고 하는 기도는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가 죽여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이다.
엘리야가 왜 이렇게 되었나?
엘리야는 자신이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외롭고 고독한 마음이 들었다. 아합과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다 죽였고 이제 자기까지 죽이려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10절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목숨걸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으로 뜨겁게 했다. 그런데 아무리해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이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지치고 낙담되고 피곤해졌다. 이럴때 누구 하나라도 거들어주고 위로해주고 도와주면 힘이 날텐데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달아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라는 생각 때문에 이런 생각이 찾아온 것이다.
전도서 4:9-1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옆에 동무가 있어서 내가 쓰러지려고 할때 붙들어주는 사람, 넘어질때 일으켜주는 사람이 있으면 큰 힘이 된다. 그런데 혼자 있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함께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감사하면서 고맙게 여겨야 한다. 가족이 있는 것을 감사하고, 교인들이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믿음의 동역자들이 함께 있으면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다니엘에게 믿음의 세친구가 있었다. 이들은 좋은 동역자였다. 어려울때 서로 기도하고 의논하고 마음을 나누고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포로생활 중에서도 낙심치 않고 믿음으로 승리할수 있었다.
우리 주변에 힘들어 넘어진 사람들이 많다. 낙심한 사람들, 지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일으켜줄 수 있어야 하겠다. 그렇게하다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혼자 살아가기 어렵다. 혼자 믿음생활 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 곁에서 돕고 협력하는 모습을 배워야 하겠다.
3절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가는
엘리야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말씀만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뭐래도 치우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형편을 보았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달아나 버리고 낙심했다.
엘리야의 형편이 갑자기 나빠진 것이 아니다. 전에도 그랬다. 전에도 우상숭배하는 선지자들이 가득했고, 전에도 묵을 곳이 없었고, 이방 과부의 집에서 얹혀 살았다. 한번도 엘리야가 편안하게 풍부하게 지낸적이 없다. 그러나 전에는 낙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지쳐 쓰러지지 않았다. 하나님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형편을 보았다.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는 형편, 우상 선지자들을 죽였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형편.. 이런 것을 보니까 지쳤다. 왜이리 고달픈 일이 계속되는가?
세상을 보면 언제나 우리를 낙심시키는 것 밖에 없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면 낙심 뿐이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풍랑이는 바다 위를 걸었다. 맨발로 바다를 걸은 최초의 사람이다. 그런데 바람과 풍랑을 보는 순간 마음에 두려움과 의심이 들어와서 물속으로 빠졌다.
세상을 보다 낙심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형편 보다가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항상 원수와 대적은 우리를 공격하고, 시험을 계속되고, 핍박이 계속된다.
천국에 가기까지는 세상에는 힘들고 고달프고 시험과 대적과 핍박이 계속될 것이다. 착하고 선하게 산다고 해서 편하고 좋은 일만 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계산해야 한다. 그래야 낙심하지 않을수 있다.
집안 형편을 보면 감사가 많은가? 걱정이 많은가?
코로나가 유행하는 세상을 보면 두려움이 많은가? 평안이 많은가?
형편을 보면 낙심할 것 밖에 없다. 코로나가 끝날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할지 답답한 것 밖에 없다. 우리는 형편을 보지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때 겁낼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최후승리는 교회와 성도에게 있다. 택한 백성들을 마침내 구원하셔서 영광 가운데 참여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따라서 형편과 세상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마귀는 밤낮 쉬지 않고 하는 일이 시험하는 일이다. 마귀는 그런 일 하도록 태어났으니 놔두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감당할수 있는 시험만 주신다고 했다. 그러므로 무슨 시험이 와도 능히 감당할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담대하게 나가면 승리할수 있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승리할수 있다.
4절
엘리야가 사명 다 내버리고 신앙의 잠을 자고 있다. 자기가 해야 될 일을 다 망각해버렸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책임을 망각했다. 이제 넉넉하다는 것이다. 이제 충분하다는 것이다. 해도해도 안되니까 안하겠다는 것이다. 로뎀나무아래에서 잠든 것은 육신뿐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잠이 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만두겠습니다! 하나님께 항의하면서 누워서 자고 있다.
육신적으로는 피곤할때 조금 자면 회복이 된다. 그러나 신앙의 잠은 절대 자면 안된다. 말세를 교훈하면서 성경은 "자다가 깰때가 되었다"고 말씀한다. 절대 잠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 시대에 무엇을 해야할지 깨달아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신다.
혼자라고 생각하고 낙심이 빠져있고, 형편 바라보고 다 포기하고 신앙 망각하고 잠을 자는 엘리야인데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기도의 내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는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부르짖고 있다. 자기 사정을 살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이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께 나와서 호소하고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 불평이 나와도 하나님께 해야 한다.
그런데 아주 하나님을 떠나고 멀리해버리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되면 안된다.
엘리야는 잘못된 기도라도 기도했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
5-8절
천사를 보내주셨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서 지쳐 쓰러져있는 엘리야를 위해 천사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어루만져주셨다.
"너 많이 힘들었구나.. 너 참 많이 지쳤구나.. 너무너무 피곤하구나.. 너무너무 속상했구나.."
천사가 어루만져 줄때 엘리야가 얼마나 큰 힘을 얻었겠는가.
사람이 와서 손만 잡아주어도 힘이 될 상황인데 천사가 찾아와서 어루만져주기 까지 했으니 엄청난 은혜를 받았다.
그뿐 아니라 음식을 준비해와서 먹게 했다.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 물을 먹고 위로를 얻었다.
그런데 너무 힘든 상황이라 한번에 일어나지 못하고 그 음식 먹고 쓰러져 잠들었다.
그러자 천사가 다시 어루만지고 음식을 주었다.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일어나서 호렙산까지 40일을 갔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엘리야처럼 힘들어 지쳐 쓰러질때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형편을 아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다니엘이 쓰러졌을 때에도 이런 은혜를 주셨다.
다니엘 10:18-19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쓰러져 있는 다니엘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어루만져주시고 말씀하셨다.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랬더니 힘이 나고 강해졌다. 그 말씀 한마디에 은혜받고 힘을 얻어 일어나서 승리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9-10절
호렙에 굴속이 있는 엘리야에게 주님이 찾아가신다.
11-12절
크고 강한 바람이 지나갔다. 그런데 그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의 역사를 가리킨다.
바람 후에 지진이 났다. 그런데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후에 불이 있었으나 불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
바람, 지진, 불이 지나간 후에 세미한 소리가 들렸는데 그 세미한 소리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13절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렇게 말씀하시고 할일을 지시하신다.
15-17절
엘리야 선지자는 할만큼 했습니다.. 넉넉합니다..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새로운 일을 지시하셨다. 할일이 남았다는 것이다.
두가지로 볼수 있는데 하나는 사람 세우는 일이다.
"하사엘에게 기름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세상 나라 왕을 세워서 세상 나라가 바로되도록 사명을 주셨다.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북 이스라엘은 타락된 날이다. 타락된 나라의 왕을 바로 세워서 심판하는 일을 하라고 하셨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
교회가 해야하는 일 가운데 중요한 일이 사람 세우는 일이다.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믿음의 일꾼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이뤄나갈수 있다.
자녀들에게, 교회의 젊은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서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야 한다.
한국 선교 초기 선교사들이 한 일이 바로 사람 세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국이 세계를 짊어지는 기독교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람 세우는 일, 사람 키우는 일을 해야 한다.
일꾼을 세우면 일꾼들이 엘리야 선지자가 하려는 일들을 다 할 것이다.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예후는 우상숭배자들을 다 잡아 죽이는 일을 했다. 그리고 아합과 이세벨을 심판하는 일을 한다. 엘리야 선지자를 잡아 죽이려고 해서 엘리야가 겁먹고 도망쳤는데, 예후를 세우면 예후를 통해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이 강하다고, 원수 대적 마귀가 강하다고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하나님의 대적들을 다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일꾼을 세워서 하신다.
18절
엘리야는 자기만 남았다고 한탄했었다. 이제 자기도 잡혀 죽을까봐 두려워 떨었다.
그러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믿음의 사람이 칠천명이 남아있다고 했다.
참교회, 바른 신앙을 지키는 자들이 남아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계속 해나가신다. 이단이 아무리 활개를 치고 미혹을 해도 하나님께서 참 교회를 세워나가시고 믿음의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주신다.
엘리야 선지자처럼 드러내놓고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사람이 있고, 칠천명처럼 조용이 숨어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이렇게 믿음 지키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믿음 지키는 사람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 칠천명을 남겨두셨다.
낙심한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들도 회복시키셔서 하나님의 일에 사용해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실 것이다.
1절
아합왕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기적을 체험했다.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함으로 3년 6개월 만에 비가 오는 은혜를 맛보았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들을 직접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믿음에 서지 못하고 아내 이세벨에게 아부하며 살아간다. 참 불쌍하고 믿음없는 모습이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죽였으니 악한 이세벨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2절
이세벨은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 내일 이맘때 반드시 죽이겠다고 맹세한다. 대단한 각오로 죽이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악의 끈질긴 모습이다. 이쯤 되면 아합과 이세벨이 손들고 항복하는 것이 옳은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목격했기에 회개해야 할텐데 끝까지 발악하고 있다.
3절
이 모습에 엘리야가 낙심하고 만다. 아무리 해도 발악하고 회개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선한 사람 엘리야가 지치고 낙담하게 되었다.
이세벨의 협박을 받고 엘리야는 도망을 친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다가, 믿음의 선한 싸움 싸우다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달아나버린다. 이것이 마귀의 의도요 역사이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힘들면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가 많으면 낙심하고 도망하는 사람이 있다.
4절
엘리야는 이세벨의 군대가 잡을수 없을만큼 멀리 달아나고 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는 선지자였다. 그런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남유다로 도망하고, 최남단 브엘세바까지 도망을 했다. 그리고 하룻길을 광야로 더 들어갔다. 그곳에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치고,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힘들어서 낙담하는 경우가 있다. 현실이 너무 힘들고 평안하지 못할때, 하는일 마다 꼬이고 자꾸 어려워져 갈때 그래서 견딜수 없는 심적 고통과 두려움이 닥쳐올때 답답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있다.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안팎으로 스트레스만 쌓인다.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마음의 짐은 점점 무거워진다. 이럴때 지치고 낙심하고 도망치고 싶을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절대 잘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생활이 아니다. 잘못된 것이다.
엘리야도 이랬는데 나도 그래도 되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기도는 했는데 내용이 잘못되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여달라고 하는 기도는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가 죽여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이다.
엘리야가 왜 이렇게 되었나?
엘리야는 자신이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외롭고 고독한 마음이 들었다. 아합과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다 죽였고 이제 자기까지 죽이려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10절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목숨걸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으로 뜨겁게 했다. 그런데 아무리해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이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지치고 낙담되고 피곤해졌다. 이럴때 누구 하나라도 거들어주고 위로해주고 도와주면 힘이 날텐데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달아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라는 생각 때문에 이런 생각이 찾아온 것이다.
전도서 4:9-1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옆에 동무가 있어서 내가 쓰러지려고 할때 붙들어주는 사람, 넘어질때 일으켜주는 사람이 있으면 큰 힘이 된다. 그런데 혼자 있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함께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감사하면서 고맙게 여겨야 한다. 가족이 있는 것을 감사하고, 교인들이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믿음의 동역자들이 함께 있으면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다니엘에게 믿음의 세친구가 있었다. 이들은 좋은 동역자였다. 어려울때 서로 기도하고 의논하고 마음을 나누고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포로생활 중에서도 낙심치 않고 믿음으로 승리할수 있었다.
우리 주변에 힘들어 넘어진 사람들이 많다. 낙심한 사람들, 지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일으켜줄 수 있어야 하겠다. 그렇게하다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혼자 살아가기 어렵다. 혼자 믿음생활 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 곁에서 돕고 협력하는 모습을 배워야 하겠다.
3절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가는
엘리야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말씀만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뭐래도 치우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형편을 보았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달아나 버리고 낙심했다.
엘리야의 형편이 갑자기 나빠진 것이 아니다. 전에도 그랬다. 전에도 우상숭배하는 선지자들이 가득했고, 전에도 묵을 곳이 없었고, 이방 과부의 집에서 얹혀 살았다. 한번도 엘리야가 편안하게 풍부하게 지낸적이 없다. 그러나 전에는 낙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지쳐 쓰러지지 않았다. 하나님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형편을 보았다.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는 형편, 우상 선지자들을 죽였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형편.. 이런 것을 보니까 지쳤다. 왜이리 고달픈 일이 계속되는가?
세상을 보면 언제나 우리를 낙심시키는 것 밖에 없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면 낙심 뿐이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풍랑이는 바다 위를 걸었다. 맨발로 바다를 걸은 최초의 사람이다. 그런데 바람과 풍랑을 보는 순간 마음에 두려움과 의심이 들어와서 물속으로 빠졌다.
세상을 보다 낙심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형편 보다가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항상 원수와 대적은 우리를 공격하고, 시험을 계속되고, 핍박이 계속된다.
천국에 가기까지는 세상에는 힘들고 고달프고 시험과 대적과 핍박이 계속될 것이다. 착하고 선하게 산다고 해서 편하고 좋은 일만 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계산해야 한다. 그래야 낙심하지 않을수 있다.
집안 형편을 보면 감사가 많은가? 걱정이 많은가?
코로나가 유행하는 세상을 보면 두려움이 많은가? 평안이 많은가?
형편을 보면 낙심할 것 밖에 없다. 코로나가 끝날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할지 답답한 것 밖에 없다. 우리는 형편을 보지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때 겁낼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최후승리는 교회와 성도에게 있다. 택한 백성들을 마침내 구원하셔서 영광 가운데 참여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따라서 형편과 세상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마귀는 밤낮 쉬지 않고 하는 일이 시험하는 일이다. 마귀는 그런 일 하도록 태어났으니 놔두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감당할수 있는 시험만 주신다고 했다. 그러므로 무슨 시험이 와도 능히 감당할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담대하게 나가면 승리할수 있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승리할수 있다.
4절
엘리야가 사명 다 내버리고 신앙의 잠을 자고 있다. 자기가 해야 될 일을 다 망각해버렸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책임을 망각했다. 이제 넉넉하다는 것이다. 이제 충분하다는 것이다. 해도해도 안되니까 안하겠다는 것이다. 로뎀나무아래에서 잠든 것은 육신뿐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잠이 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만두겠습니다! 하나님께 항의하면서 누워서 자고 있다.
육신적으로는 피곤할때 조금 자면 회복이 된다. 그러나 신앙의 잠은 절대 자면 안된다. 말세를 교훈하면서 성경은 "자다가 깰때가 되었다"고 말씀한다. 절대 잠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 시대에 무엇을 해야할지 깨달아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신다.
혼자라고 생각하고 낙심이 빠져있고, 형편 바라보고 다 포기하고 신앙 망각하고 잠을 자는 엘리야인데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기도의 내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는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부르짖고 있다. 자기 사정을 살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이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께 나와서 호소하고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 불평이 나와도 하나님께 해야 한다.
그런데 아주 하나님을 떠나고 멀리해버리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되면 안된다.
엘리야는 잘못된 기도라도 기도했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
5-8절
천사를 보내주셨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서 지쳐 쓰러져있는 엘리야를 위해 천사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어루만져주셨다.
"너 많이 힘들었구나.. 너 참 많이 지쳤구나.. 너무너무 피곤하구나.. 너무너무 속상했구나.."
천사가 어루만져 줄때 엘리야가 얼마나 큰 힘을 얻었겠는가.
사람이 와서 손만 잡아주어도 힘이 될 상황인데 천사가 찾아와서 어루만져주기 까지 했으니 엄청난 은혜를 받았다.
그뿐 아니라 음식을 준비해와서 먹게 했다.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 물을 먹고 위로를 얻었다.
그런데 너무 힘든 상황이라 한번에 일어나지 못하고 그 음식 먹고 쓰러져 잠들었다.
그러자 천사가 다시 어루만지고 음식을 주었다.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일어나서 호렙산까지 40일을 갔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엘리야처럼 힘들어 지쳐 쓰러질때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형편을 아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다니엘이 쓰러졌을 때에도 이런 은혜를 주셨다.
다니엘 10:18-19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쓰러져 있는 다니엘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어루만져주시고 말씀하셨다.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랬더니 힘이 나고 강해졌다. 그 말씀 한마디에 은혜받고 힘을 얻어 일어나서 승리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9-10절
호렙에 굴속이 있는 엘리야에게 주님이 찾아가신다.
11-12절
크고 강한 바람이 지나갔다. 그런데 그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의 역사를 가리킨다.
바람 후에 지진이 났다. 그런데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후에 불이 있었으나 불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
바람, 지진, 불이 지나간 후에 세미한 소리가 들렸는데 그 세미한 소리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13절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렇게 말씀하시고 할일을 지시하신다.
15-17절
엘리야 선지자는 할만큼 했습니다.. 넉넉합니다..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새로운 일을 지시하셨다. 할일이 남았다는 것이다.
두가지로 볼수 있는데 하나는 사람 세우는 일이다.
"하사엘에게 기름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세상 나라 왕을 세워서 세상 나라가 바로되도록 사명을 주셨다.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북 이스라엘은 타락된 날이다. 타락된 나라의 왕을 바로 세워서 심판하는 일을 하라고 하셨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
교회가 해야하는 일 가운데 중요한 일이 사람 세우는 일이다.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믿음의 일꾼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이뤄나갈수 있다.
자녀들에게, 교회의 젊은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서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야 한다.
한국 선교 초기 선교사들이 한 일이 바로 사람 세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국이 세계를 짊어지는 기독교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람 세우는 일, 사람 키우는 일을 해야 한다.
일꾼을 세우면 일꾼들이 엘리야 선지자가 하려는 일들을 다 할 것이다.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예후는 우상숭배자들을 다 잡아 죽이는 일을 했다. 그리고 아합과 이세벨을 심판하는 일을 한다. 엘리야 선지자를 잡아 죽이려고 해서 엘리야가 겁먹고 도망쳤는데, 예후를 세우면 예후를 통해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이 강하다고, 원수 대적 마귀가 강하다고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하나님의 대적들을 다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일꾼을 세워서 하신다.
18절
엘리야는 자기만 남았다고 한탄했었다. 이제 자기도 잡혀 죽을까봐 두려워 떨었다.
그러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믿음의 사람이 칠천명이 남아있다고 했다.
참교회, 바른 신앙을 지키는 자들이 남아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계속 해나가신다. 이단이 아무리 활개를 치고 미혹을 해도 하나님께서 참 교회를 세워나가시고 믿음의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주신다.
엘리야 선지자처럼 드러내놓고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사람이 있고, 칠천명처럼 조용이 숨어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이렇게 믿음 지키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믿음 지키는 사람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 칠천명을 남겨두셨다.
낙심한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들도 회복시키셔서 하나님의 일에 사용해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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