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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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수요저녁예배 설교 (롬 8:18-30 / 성도의 참된 소망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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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5-01 21:26 조회3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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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ku4DqqgRtRM?si=CFS5Cutrp3qnn0Cv


17절에 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증거한다.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상속자가 되었다. 우리가 상속자가 되었는데 이 상속권은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냥 영광만 받게 하셨으면 좋았을텐데,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18

이땅에서 당하는 현재의 고난과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하늘나라에서 받아 누릴 영광은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고난과 영광의 관계를 잠깐 살펴보겠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7)

압축해서 설명하면 환난이 영광을 이룬다고 했다. 환난을 당해야, 고난을 당해야 영광을 받아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 왜냐하면 환난이 영광을 이루기 때문이다. 환난은 잠시 받는 것이고 영광은 영원하다고 대조한다. 환난은 경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영광은 중한 것이라고 말씀한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영광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우리를 예수님을 믿게 해서 자녀 삼으시고, 상속자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땅에 사는 동안 잠시 고난을 받게 하시는데 영광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하시려고 고난을 허용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광에 이르도록 작정하시고, 큰 영광을 누리는 자게 되도록 계획하셨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8:30)

우리를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셔서 마침내 영화롭게 하신다. 그 영광의 자리에 다 들어가서 영광을 세세토록 누리게 하시려고 계획하시고 작정하셨다. 그런데 그 영광을 누리려면 자격이 있어야 하고, 실력이 있어야 하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땅에 사는 동안 고난을 통해서 자격을 갖추게 하신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 우리 앞에 있는 영광을 바라봐야 한다. 큰 영광, 놀라운 영광을 주시려고 고난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고 영광을 바라보면 고난이 힘들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올림픽이 연기가 되었다. 선수들이 4년간 메달을 목표로 죽을 고생을 했는데, 연기가 된 것에 대해서 각오를 다지는 인터뷰를 했다.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메달을 소망하며 참고 견디고 희생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받을 영광과 상급은 금메달에 비할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상상치 못할 영원하고 무한한 영광이다. 천국 영생 영광이 우리 앞에 있다. 따라서 고난을 당할 때 고난 자체만 보지 말고 영광을 바라봐야 하겠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믿음으로 바라봐라! 지금 우리 앞에 보이지 않지만 장차 나타날 것이고, 반드시 아들들에게 주실 영광이다. 이런 마음으로 고난을 바라보면 고난도 어렵지 않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는 것이 참 힘들다. 그런데 훈련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고난 받을 각오를 하면 오히려 견디기 쉽다. 바울은 그런 각오로 고난을 받은 것 같다. 물론 앞에 있는 영광도 바라보았지만, 마땅히 당해야 될 것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으면서 마땅히 당해야 될 고난이라고 여기고 순교함으로 승리했다. 고난을 마땅한 것으로 여기면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느다.

어쨌든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19-22

피조물들이 탄식을 한다고 했다. 피조물은 동물, 식물 등 세상의 모든 물질, 만물들을 가리킨다.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했고,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라고 했다.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죄짓는데 이용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조물은 원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 그런데 피조물에게는 영혼과 인격이 없기 때문에 직접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지 못한다. 사람이 믿음으로 그 피조물을 사용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피조물들을 죄짓는데 상요한다. 그럴 때마다 피조물들이 탄식한다. 죄 짓는데 이용당하고 싶지 않지만 영혼과 인격이 없기 때문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무들이 우상과 이방 신당을 짓는데 이용당하면 탄식할 것이다. 나무들이 예배당 의자나 예배당 건축하는데 이용당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에 기뻐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을 믿는 일에 바르게 사용해주기를 원한다고 했다.

고난과 영광을 말씀하다가 왜 갑자기 이 말씀을 하셨을까? 피조물들도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데에서 해방받기를 원한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쓰임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 성도들이 죄짓는데 굴복하면서, 악한 일에 이용당하면서 탄식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는가? 피조물들도 탄식하고 괴로워하고 안타까워 하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지으면서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지나간다면 피조물보다 못한 것이다. 우리가 완전하지 못해서 넘어질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지만 그럴 때마다 탄식해야 한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죄짓는데 이용당하고 악한 일에 넘어져서 이런 비참한 모습으로 살게 되고 이런 형편 없는 생활하는 자리에 떨어졌을까? 피조물도 탄식을 한다. 성도도 이런 탄식을 마땅히 해야 한다. 이런 탄식을 하면서 사모하면서 애를 써야 믿음이 자라난다.

 

23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 성령으로 거듭난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의 역사로 죽은 영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영혼은 중생했지만 육신은 아직도 죄 가운데, 타락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지내고 있다. 그래서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고 했다. 육체가 죄에서 건짐 받아서 거룩해지고 깨끗해지기를 사모하며 힘써야 된다는 것이다.

피조물도 이런 탄식이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런 탄식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안된다. 이 탄식이 우리 안에 많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점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된다. 죄의 종노릇하던 육체가 건짐 받고 점점 거룩해지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24-25

구원받은 성도의 소망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는 세상 것, 물질적인 것을 소망하며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상급을 소망하고 영광스러운 구원을 소망하고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며 사는 것을 소망하며 사는 것이 참 성도의 삶이다. 이 소망을 가졌으면 참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고난 속에서도 참고, 환난 속에서도 참고, 어려운 중에서도 참고 기다리면서 영광에 이르도록 힘써야 한다.

 

26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경 전체를 보면 성부 하나님께서 구원을 예정하셨다. 성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예정대로 구속을 성취하셨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을 성도들에게 적용시켜서 거듭나게 하시고 자라나게 하시고 성화되게 하신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했다.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르는데, 곁에 오셔서 도와주시고 위로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약할 때마다 붙들어주시고, 낙심할 때마다 위로해주신다.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우리를 담대하고 강하게 하신다. 고난 가운데 넘어질 때 성령께서 위로하시고 일으켜 주신다. 이렇게 늘 우리를 도와주신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순종하도록 감동주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복음을 증거하면서 사명을 감당케 하신다.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으로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는 연약해서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바르게 기도하는지 잘 모른다. 기도하면서도 졸고 딴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잡념과 세상 생각으로 방황하다가 끝날 때가 있다. 기도를 해도 세상적이고, 육신의 욕심으로 구할 때가 많다. 정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바른기도를 할 때가 얼마나 많을까?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고 했으니 우리는 제대로 못하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령이 그런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해주신다. 사탄이 밀까부르듯 베드로를 시험에 넘어뜨리려고 할 때 주님께서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셨다. 그처럼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간구하신다. 이런 은혜를 힘입어서 믿음을 지키면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27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신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데 우리 편을 들어주시고 우리의 욕심을 이루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신다. 이렇게 역사하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는 성도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자녀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진리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도 성도, 우리를 가리킨다.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도 성도를 가리킨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 모든 것이 함께 일한다는 의미이다. 성도가 무슨 일을 당할 때 육신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것과 합쳐져서 영적인 복이 되고 유익이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봐야 한다. 고난만 보면 왜 믿는 자에게 고난을 주실까? 왜 어려움을 당하게 하시고 실패하게 하실까? 이것만 보면 손해 같고 낙심이 된다. 그런데 다른 것, 영적인 것과 합해서 보면 그것이 유익을 위해서, 복을 위해서 주신 것이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고 종으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감옥에서도 선을 베풀었지만 보상을 받지 못한다. 계속 손해만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뒤에 총리된 것과 합쳐놓고 보면 그렇게 팔려갔기 때문에,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술관원장이 꺼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할 기회가 생기고 총리가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흉년으로 죽게 되었을 때 그들을 구원하는 놀라운 일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한가지 일만 바라보면 안된다. 성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선이 되고, 유익을 위해서 허락하신 일이다.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 성도를 가리키는데, 사랑하셨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믿기도 전에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예정하시고 불러주셨다. 우리는 우연히 어쩌다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에 의해서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반드시 성취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30

구원의 여러 단계, 구원의 서정이 있는데, 압축해서 4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단계는 미리 정하신 것이다. 구원을 예정하시고 작정하셨다. 우리가 교회 나올 때 가족에게 끌려 나오기도 하고, 친구 따라 오기도 하고, 어려운 일을 만나서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도 오는데,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불러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이다.

두번째는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은 예정한 자를 부르신다. 전도로 구원을 얻게 하셨는데, 복음을 전할 때 예정된 사람, 선택된 사람만 듣고 믿는다. 그래서 구원받게 하셨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13:48)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가 전도를 받고 믿고 구원받는 것이다.

세번째는 의롭다 하신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셔서 법정적으로 의인이라고 선언하셨다. 우리가 죄인인데,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죄를 짓고 사는데 하나님께서 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하셨다.

네번째는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다. 의롭다 하시는데에서 끝나지 않고 구원을 점점 이루어서, 이 세상 사는 동안 연단받고, 거룩해지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셔서 마침내는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다. 이것이 성도를 위해 계획하신 일이고 우리가 장차 받을 복이다.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확실히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과거형으로 기록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안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손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리]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고난 없이는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고난은 잠시 받고 작은 것이지만 영광을 영원하고 무한하다.

피조물도 탄식한다고 했다. 썩어짐에 종노릇하는 것을 탄식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기를 소원하고 있다. 우리도 이렇게 탄식해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기를 소망해야 한다. 죄를 지었다면 탄식하고 죄를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성도의 탄식이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 동안 힘써야 될 일이다.

이런 성도를 성령께서 도와주신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잘 하도록 인도해주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고난으로 끝나게 하시지 않는다.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고 고난을 허락하시고 여러가지 시험도 주시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영광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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