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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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2 수요저녁예배 설교 (롬 9:19-33 / 하나님의 예정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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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5-22 21:31 조회3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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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xNTSM47QWOg?si=daCIAGvRE7OoRfiG


바울은 로마서 앞 부분에서 택한 백성과 예정 교리에 대해서 말씀했다. 이삭은 선택하고 이스마엘은 선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야곱은 선택하고 에서는 선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선택 교리에 대해서 두가지 가상 질문을 하고 설명을 한다.  


14절에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라고 질문했다. 여기에 대해서 답을 하는데 "그럴 수 없느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절대로 불의하시지 않다. 


19절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라고 질문했다. 하나님이 바로를 강퍅하게 했다고 했다. 하나님이 강퍅하게 해놓고서 어떻게 벌하시고 책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몰라서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다. 사람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손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우주와 사람을 만드셨다. 피조물은 창조주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다. 피조물과 창조주는 너무 차이가 크다. 감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주권에 대해서 항의하거나 반문하거나 따질 수 없다. 지음 받은 물건이 자기를 지은 자에게 왜 나에게 이렇게 만들었냐고 따질 수 없다. 

하나님이 불택자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신 것도 하나님이 잘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는 것은, 바로의 마음이 원래 착하고 선한데 악하게 만드셨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는 원래 마음이 완악하다. 그 마음을 그대로 놓아두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거역하다가 결국 심판 받아 죽게 된다. 


20절

바울은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가 말하는 사람, 하나님께 따지려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 사람아!" 이것은 반박, 항의하는 일이 적반하장이고 분수를 모르고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음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냐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은 창조주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 없다. 

창조주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많으시고 절대적인 권세를 가지셨는지 알아야 한다. 창조주를 모르니까 엉뚱하게 항의하고 반항하고 따진다.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거꾸러졌다. 하나님의 빛만 보고서도 말씀만 듣고도 얼어 붙어 버렸다.

우리는 사람이다. 흙덩이를 뭉쳐서 지음 받은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타락하고 교만해서 자신을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로 여긴다. 피조물된 인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는 너무 크다. 그래서 항거하거나 항의할 권리가 없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순응하고 감사하고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이 몇가지를 설명한다. 


21절

첫째는 토기장이 비유이다.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인간을 그릇에 비유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사 64:8)

주는 우리 아버지시다. 우리는 진흙 덩어리이다. 주는 토기장이이고 우리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바로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깨달아야 하나님께 항의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사 29:16)

이런 일은 있을 수 없고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아담은 흙이다. 모든 사람은 흙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코에 생기를 넣어서 생명체가 되게 했는데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토기장이가 흙으로 그릇을 만들 때 똑같이 만들지 않고, 크고, 작게, 귀하게, 천하게, 실내용, 야외용으로 만든다. 집 안에 보면 도자기는 거실이나 방 안에 놓고 귀하게 취급한다. 그런데 변기는 화장실에 두고 천하게 사용한다. 그런 권리가 토기장이에게 있다. 진흙이 감히 토기장이에에 자기를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말할 수 없다. 창조주 하나님에게 있어 사람은 흙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항의하거나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따질 수 없다. 이것을 바로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이것을 잘 알아야 자기 자리에서 믿음 생활을 잘 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라서 택한 백성을 내시기도 하고 불택자를 내실 수도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 생일이 되었는데 닭 한마리를 잡아서 생일잔치를 치뤘는데, 왜 닭을 죽였냐고 항의할 수 없다. 닭은 원래 잡아 먹으려고 키우는 것이다. 닭과 사람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서 내 아들 생일에 남의 집 아들을 잡아서 죽였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하는 것이다. 우리 집 아들과 남의 아들은 동등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러나 사람과 닭은 너무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아들 생일에 닭을 잡을 수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흙덩어리이기에 하나님께 항의할 수 없다. 


22절

"진노의 그릇" 믿지 않는 자들, 불택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이 진노의 그릇을 만드셨다. 불택자를 내셨다. 그리고 그 그릇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고 진노를 쏟아 부으셔서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이신지 알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죄에 대해서는 진노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바로나 가룟 유다와 같은 자들을 내시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짓다가 결국 심판을 받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시고 진노가 얼마나 큰지 온 세상 사람들에게 깨달아 알게 하신다.

노아 시대 죄악이 관영해지자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 지 온 세상이 알게 하셨다. 바로에게 열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두려운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

만약에 악한 자가 하나도 없다면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이 없고,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 보여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들도 내신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 16:4)

하나님께서 온갖 것을 지으셨다.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쓰시려고 필요해서 내셨다고 했다. 


23절

"긍휼의 그릇" 택한 백성들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신 자들이다. 이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신다. 온갖 은혜와 사랑과 복을 쏟아 부어주시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이 많고 긍휼이 크시고 복을 주고 싶어하시는지 알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택자도 내시고 불택자도 내신 것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택자를 곡식, 알곡이라고 했고, 불택자는 가라지라고 했다. 택자는 양이라고 설명하고, 불택자는 염소라고 했다. 염소 뿔을 자른다고 양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염소를 아무리 잘 먹여도 양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에 대해서,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을 만드신 것에 대해서, 불택자와 택자를 내신 것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24절

"이 그릇은" 긍휼의 그릇을 가리킨다. 긍휼의 그릇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이다. 유대인 중에서도 택한 백성이 있고, 이방인 중에서도 택한 백성이 있다. 유대인 전부가 택한 그릇이 아니다. 구약시대에는 국가적으로 선택을 해서 율법을 주시고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다. 그러나 그들이 전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구원받기로 선택된 자는 유대인 중에 일부, 이방인 중에서 일부, 믿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전적인 은혜로 되는 것이다. 은혜로 구원받고 영생을 얻어서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기에 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다. 우리를 믿게 하시고 택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 


25-26절

구약의 예언을 통해서 예정 교리에 대해서 설명한다. "호세아의 글"을 인용한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호 1:2)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라고 했다.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해서 세 아이를 낳는다.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로암미를 의미하고,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로루하마를 의미하고,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스르엘을 의미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 130년전에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왔다. 하나님이 우리를 약속의 자녀로 삼으시고 믿음을 선물해 주셔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천국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27-29절

이스라엘 중에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약속의 자녀만 구원을 받는다. 남은 자, 택한 백성만 구원을 받는다. 그들만 메시야를 믿고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씨를 남겨 두셨다. 


30-33절

지금까지 앞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기준으로 택자와 불택자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 인간은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인간 편에서도 풀어서 설명을 해준다.

이방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 믿음으로 의를 얻어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 택한 백성은 하나님이 택해서 구원을 받지만, 인간 편에서 보면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구원을 못 받는 자들은 왜 구원을 못 받는 것인가? 믿음을 따르지 않고 행위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자기 행위를 의지했다. 자기의 행위의 공로로 구원을 받아보려고 하다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았고, 자기 행위로 구원을 이루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편에서는 택한 자가 구원을 받고 불택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부딪칠 돌, 걸림돌, 거치는 바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을 믿으면 반석 되시는 예수님 위에서 안전하고 평안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바위 되시는 예수님에게 깨지게 된다.

믿으면 다 구원을 받는다.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행위를 의지하다가 구원을 못받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 받고 의롭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된다. 우리는 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예수님 믿는 것은 미룰 일이 아니다. 기회 놓치지 말고 믿어야 구원을 받고 은혜를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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