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20240529 수요저녁예배 설교(롬 10:1-10 /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5-29 21:31 조회339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QzYZJAgbBCY?si=b91kGLqtBQOXmPnS


로마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바울이 10장에 와서는 기도한다. 근심과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바울의 모습을 배워야 하겠다.  


1절

바울의 기도의 모습은 "이스라엘을 위함이니"라고 했다. 그가 이스라엘을 참으로 사랑하고 그들의 구원에 대해서 안타까워 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있다. 우리도 진정으로 사랑하면 기도하게 되어있다. 교회와 가정과 이웃을 사랑하므로 기도해줘야 한다. 기도해주지 않는다면 정말로 사랑하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구원받아서 천국과 지옥을 확실히 아는 자는 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자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결국 지옥에 가서 멸망당할텐데 라는 마음으로 안타까워 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2절

바울이 증언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지만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고 있다. 열심은 자동차의 엔진과 같다. 엔진에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자동차는 움직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열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배당에 모이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성경도 읽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게 된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19)

미지근한 믿음을 가진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신 내용이다. 열심을 내라고, 힘을 쓰라고 말씀하셨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11)

세상 일도 게으르면 일이 되지 않는다. 농사는 망치고 지붕에 물이 새고 집안이 엉망이 된다. 신앙생활도 열심이 식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열심이 있기는 했지만 잘못된 열심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제로 하루에 세번씩 기도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했다. 십일조를 철저하게 했다. 절기를 철저하게 지키고 율법을 외우다시피 했다. 세상 어느 민족 중에, 어떤 사람들이 이런 열심을 가졌겠는가? 우리는 그들의 열심을 못따라간다. 그런데 그들의 열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열심을 낼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았다.

열심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바른 열심이 좋은 것이다. 이단들도 열심이 얼마나 많은가? 신비주의자들도 열심이 특심이다. 그들의 열심을 따라가기 어렵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지 전에 성도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을 냈는지 모른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 오고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이는 일까지 했다. 자기의 전통과 행위와 기득권과 선입견과 비뚤어진 신앙관대로 열심을 냈다. 나중에 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열심으로 일을 하니 그 누구도 바울의 열심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때의 열심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일에 손해를 주고 방해만 했다. 


3절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민족이지만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배척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어떻게 믿으라고 하는지, 무엇에 힘쓰라고 하는지를 전혀 몰랐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의를 몰랐다. 그리고 자기가 의를 세우려고 했다. 자기가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해서 의인이 되려고 했다. 하나님의 의는 알지도 못하고 그 길로는 가지도 않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과 부딛히고, 예수님와 대립하게 되었다. 유대인들 때문에 예수님이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는지 모른다. 바울을 쫓아다니면서 대적했다. 신앙생활은 내 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 믿는 일을 바로 하는 것이다. 믿음생활 하면서 자꾸 나를 드러내려고 하면 안된다. 내 의를 드러내서 영광 얻으려는 생각을 가지면 안된다. 그러면 주님이 낮아지고 주님이 훼방을 받게 된다.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힘쓸수록 하나님을 반대하는 길로 가게 되었다. 주님이 말씀을 증거하고 병자를 고치고 구원운동을 하실 때 이스라엘이 사사건건 훼방하고 방해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는 일을 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주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셨는데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고 배척하고 잡아 죽이는 일을 했다. 이방인들이 앞장 선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일을 했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몰라서 엉뚱한 일을 저질렀다. 사람 안에는 의가 없다. 본질상 의롭지 못하고, 아무리 노력하고 힘써도 선을 행하지 못한다. 우리는 불의하고 악하고 추한 자들이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선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에게서는 의가 나올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의를 세워서 그것으로 인정받고 구원을 받으려는 생각을 했다. 우리도 까딱 잘못하면 그 길로 가기 쉽다. 처음에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전적으로 의만 의지하다가, 믿은지 오래되면 기득권이 생기고 자기 의를 내세우게 된다. 봉사를 얼마나 많이 하고, 교회를 오래 다니고, 헌금을 많이 하고, 수고를 많이 한 것을 자꾸 내세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없어지고 우리만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잘못되는 것이다. 바른 길이 아니다. 우리는 낮아지고 쇠해지고 예수 그리스도만 높여야 한다. 그 초심을 잃지 말고 끝까지 가져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면 안된다. 예수님을 붙들고 은혜 가운데 믿음생활을 해야 한다. 끝까지 겸손한 길로 가야 한다. 하나님의 의를 붙들면 살고 내 의를 내세우면 실패한다.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고 의지하고 주님만 따라가야 한다. 내가 뭔가를 해서 그것으로 공로가 드러나고 내가 높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되는 것이다. 


4절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것은 율법을 다 지켜서 완성해주셨다는 것이다. 의를 이루셔서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신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완성하신 율법의 의를 덧입고 내것으로 삼는 것이다. 주님이 율법을 다 지키시고 완성하시고 마침이 되셨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킬 필요는 없다. 구원 받은 이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 선을 행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 안에 들어가면 된다.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고 나는 주님 안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스라엘은 주님을 거절했다. 전통과 율법과 할례와 의식은 철저하게 지키려고 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하는 일을 하고 말았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그 길로 가면 안된다. 


5절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려고 열심을 내고 일평생 수고하며 애를 썼다. 그런데 사람이 율법을 다 지켜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약 2:10~11)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하나만 범해도 다 범한 것이 된다. 율법은 613가지이다. 율법 하나가 고리 하나라면, 그 고리가 하나만 끊어져도 다 밑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나머지가 튼튼하게 묶여 있어도 하나만 끊어져도 다 소용없게 된다. 율법을 하나만 어겨도 율법을 못지킨 것이 되기에 의인이 될 수 없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0)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 율법 613가지를 항상 행할 수 있는가? 이것을 매일 매순간 죽을 때까지 계속 지킬 수 있는가? 그것도 율법의 표면적인 것 뿐 아니라 근본 정신까지 지킬 수 있겠는가?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했다. 음욕을 품기만 해도 간음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데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해보려고 했다. 

만약에 그렇게해서 의인이 되고 구원받아 천국 갈 수 있다면 주님이 오실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이 오셔서 대속의 죽음을 죽어주신 것이다. 


6-7절

신명기 30장 11절 이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구원의 도를 얻기 위해서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주님이 구원을 완성하셨기에 주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무저갱 권세를 이기고 구원의 도를 가져오겠다고 무저갱으로 가겠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주님이 이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리하셨다. 주님을 믿으면 사망 권세를 이기고 승리자가 된다. 그러므로 주님 외에 자기가 무엇을 더 해서, 수고와 노력을 해서 구원받으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8절

말씀이 가까이 있다고 했다. 네 입, 네 마음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늘 성경책을 읽고 듣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까이에 있다. 주님을 믿어서 구원받는 것은 가까이에 있는 것이고 쉬운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구원 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는데 쉽고 간편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쉬우니까 시시하게 여기고 믿지 않으려고 한다. 불교 믿는 자들이 삼천배를 해서 무릎이 고장나고 허리에 부상을 입는다. 이슬람교 사람들이 기어서 성지순례를 해서 뭔가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다 헛일이다. 사람들은 같은 물건이라고 비싼 것은 좋다고 생각하고 싼 것은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받을 수 있다. 신구약 성경을 다 읽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모세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고, 일주일에 두번 금식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은혜를 받으면 순종할 수 있고 행할 수 있다. 


9절

"예수님은 나의 구주십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다. 


10절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 마음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입으로 시인하지 않으면 반쪽짜리이다. 마음으로 믿으면 됐지 교회까지 가야하는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입으로 시인하라고 하셨다. 예배 드리고 찬송 부르고 기도해야 한다. 감격과 기쁨이 넘쳐서 이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서 예배당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합쳐져서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이다.

이 구원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부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고 있다. 지금도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구약 율법대로 사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바울이 확실한 구원의 길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