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9/18일 주일 오전예배 차주성 목사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16-09-18 00:00 조회4,287회 댓글0건

본문

- 클릭하세요 -


[마태복음 6:9-15] “이렇게 기도하라”(차주성 목사님)

제가 모태적부터 신앙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53년 동안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기도를 많이 하고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주기도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기도를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평생을 자신이 기도를 많이 하고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사람 가운데 기도를 바로 할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완전하고 바른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인류 역사상 한 사람도 없습니다. 기도가 바로 되면 모든 것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기도로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기도만이 아니고 기도는 삶이고 생활이기 때문에 기도가 바로 되면 사람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를 향해서 너희는 그렇게 기도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① 주기도를 드릴 때 감동과 눈물과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대단하지 않습니까?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부모님이 왕과 같은 높은 사람이라도 정말 놀랄만한 일인데, 우리의 아버지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드렸습니다. 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기도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라고 입술로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생각할 때 마음 속에 눈물이 있는 사람이 있고 그냥 말로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같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우리가 찬송 부를 때 입술로는 너무 쉽게 부르고, 머리로는 시험 치면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한권의 책을 쓸 수도 있겠지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할 때 눈물이 납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할 때 감동과 눈물과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우물은 우물인데 맑은 물이 있어야 우물이지 금년같은 가뭄에 물이 없는 우물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물이 없는 우물은 이름만 우물입니다. 이 세상에 나아주고 길러주는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해도 죄송하고 눈물이 나는데,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할 때 감동과 눈물과 감격이 있습니까? 주기도를 드릴 때 감동과 눈물과 감격이 없다면 주기도를 제대로 드린 것이 아닙니다. 주기도를 진정으로 드리는 삶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할 때, 하나님과 예수님을 생각할 때,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격이 있고, 죄에 대한 회개가 있고, 바르게 살아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② 주기도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과 꿈과 유언”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입술로만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살아라”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단어가 있습니다. 이 성경에도 중요한 단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할 때 “우리”라는 말씀이 대단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복을 주시기 위해서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 “우리”가 형성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의 배필로 만드심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에 “우리”가 생겼습니다. “우리”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 아버지”라는 생각이 있습니까? “우리”는 보고 싶은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한상에서 먹고 마시던 “우리 가정”, “우리 집”이 보고 싶지 않습니까? 저는 팔남매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저는 “우리 형님, 우리 동생”을 생각하면 너무 보고 싶습니다. 왜 보고 싶겠습니까?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미운 사람은 “우리” 속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자녀를 향해서 무슨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자녀를 향한 소원과 꿈이 무엇입니까? 무슨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시기 원하십니까? 기도는 단순히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이고 꿈이고 유언입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과 소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냥 예배를 바치면서 “주기도를 드리겠습니다”라고 해서 단순히 생각할 주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소원이 이 주기도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마치면서 수천번 주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주기도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고 꿈이라는 것입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개와 고양이는 식구 중에 누가 자기를 더 사랑하는 줄 압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이 표정으로만, 입술로만 친한 척하는 것인지 마음속으로 하는 것인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기도를 드리는 자인지 아닌지 하나님이 왜 모르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신 것은 “너희가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가정생활, 교회생활, 사회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③ 주기도가 있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주기도가 있는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가정 가운데 “둘을 짝지어 줄 테니까 매일 싸우고, 미워하고, 결국 이혼하라”고 맺어진 가정은 세상에 없습니다. 주기도를 하는 가정은 남편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내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기 때문에 싸우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면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 노릇을 잘못한 것, 아내는 아내 노릇을 잘못한 것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커피 한 잔 사주고, 짜장면 한 그릇 사준 것도 아주 감사하다고 인사하는데 아내가 1년 365일, 몇 십년동안 맛있는 음식을 해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70억 인구 가운데 두 사람을 만나게 해서 짝지어 주셨습니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고 하셨습니다(잠 19:14).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분인데 이 수많은 사람 가운데 악연이 될 사람을 만나게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둘이 만나서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라고 맺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배필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주기도를 하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안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나고 믿음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자라나기를 하나님이 소원하시고 우리 모두는 우리 모두의 믿음이 자라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예배당에서 예배를 마칠 때만 주기도를 하지 말고 우리의 삶 속에서 주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 속에서 진정으로 주기도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