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12일 주일 오전예배 (창세기 14:13-24 균형잡힌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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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4:13-24] “균형잡힌 신앙생활”
신앙생활은 균형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 사람, 물질에 대해서 바로 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은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아브람 당시 가나안에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북쪽에 거하는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과 남쪽에 거하는 소돔 5대 연합군이 전쟁을 했습니다. 소돔 5대 연합국이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배반하므로 전쟁이 일어났는데 결국 소돔 5대 연합군이 패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혔는데 아브람의 조카 롯도 포함됐습니다. 아브람이 롯을 구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집에서 길리운 318명과 동맹한 마므레 형제들과 함께 전쟁을 했는데 롯을 구출합니다.
그돌라오멜의 군사는 수만명이었고 아브라함과 함께 한 군사는 많아도 천명입니다. 어떻게 적은 수로 그들을 이겼을까요? 뜨거운 형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었습니다. 기도할 때 주시는 지혜로 이겼습니다. 그돌라오멜 연합군은 승리에 도취해서 적들이 매복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먹고 마시고 자고 있는 중에 기습을 해서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빼앗긴 모든 사람들과 물건들을 되찾아오게 됩니다.
(1) “대인관계를 바로 함”
① 성도간의 관계를 바로 함. 성도는 서로 사랑하고 관대하고 어려울 때 실제로 도와야 합니다. 롯은 삼촌 아브람에게 의리를 지키지 않고 욕심, 물질 따라가다가 어려움을 당했지만 아브라함은 목숨 걸고 롯을 구해냈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을 실제로 돕고 어려움 당할 때 건져줘야 합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관심을 가지는 자는 극소수입니다. 육신의 형제, 혈육의 형제가 아플 때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육신의 형제는 잠깐 살다가 헤어지지만 믿는 사람은 영원히 함께 살 참된 형제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어려움당할 때 가만히 있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살전 5:14)(갈 6:2).
교회에 사랑 없다고 하지 말고 사랑 있는 교회를 찾지 마십시요. 어디에서 믿음생활 하던지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면 됩니다. 성도가 사귀다 보면 단점도 보이고 실수도 하기 마련이지만 나에게도 그 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성도간의 유대가 중요한 이유는 성도들은 천국에 갈 때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군사들이기 때문입니다. 형제가 약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돕고 기도하고, 곤란에 빠졌을 때 협조하고 권면하고 말씀으로 위로하면 마음이 열리고 하나가 되고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② 불신자와의 관계를 바로 함.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소돔왕이 영접했습니다. 불신자를 돕되 불신자가 호의를 베풀 때에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불신자의 칭찬이 유혹과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재물은 취하고 사람만 보내라고 했을 때 재물을 취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기 때문에 아브람은 그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신자가 불신자와 관계를 끊고 살 수는 없지만 불신자와 깊이 사귀면 믿음 지키기 어렵습니다.
불신자는 세상 풍습, 경험, 지식, 육신의 소욕을 따라 행하지만 신자는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갑니다. 따라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 수는 있어도 행동을 같이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세상 사람들과 다 어울려 지낼 수 없습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넓은 길이고 우리는 좁은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맞지 않고 신앙양심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니요”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③ 하나님이 보내신 제사장 멜기세덱과의 관계를 바로 함. 소돔왕은 이해관계 때문에 아브람과 관계했고, 멜기세덱은 신앙문제 때문에 아브람과 관계했습니다. 오늘날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교회생활을 하면 교역자와 특별한 관계를 갖게 마련입니다.
교역자가 중요한 이유는 그 직분을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가르치고 인도하고 지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면에 있어서 똑같은 사람이고 지식적인 면이나 경험, 지혜, 성품은 자기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교역자는 하나님이 불러 세우셨고 하나님 말씀을 대변해서 가르치기 때문에 그를 존중할 때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은혜 받는 것입니다. 누가 가르치던지, 인도하던지 하나님의 종을 믿고 순종하고 존중하는 것이 믿음생활에 아주 중요합니다.
(2)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함”
① 아브람이 돌아올 때 영접한 살렘왕 멜기세덱은 왕이요 제사장이었습니다. “살렘”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데 그 뜻은 평화, 평강이고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히 7:1-3)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축복하면서 대적을 이기고 승리한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깨우쳐 줍니다. 아브람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전리품의 1/10을 하나님께 바침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목숨 걸고 적은 군사로 수많은 적들을 쳐 이기고 당당히 돌아오는데 “네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 할 때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아브람은 겸손히 멜기세덱의 말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이 신앙적이고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다 성공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해주셔야 성공하는 것입니다. “하면 된다!”는 말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성공하면 자기를 나타내기 쉽지만 아브람은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성공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실패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시 시작하십시오(삼상 17:47)(사 48:11).
② 아브람이 십일조를 드렸습니다(20절). 이것이 십일조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구절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로써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인데 무엇이 부족해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도 하나님의 것인데, “주일날, 교회, 십일조”는 하나님이 내 것이라고 특별히 구별하신 것입니다. 십일조는 십분의 일을 바치는 가운데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신앙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근원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과실을 주시고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동산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로 할 때 물질 중심의 생활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성도가 물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육신에 속해서 믿음이 진보하지 못합니다. “물질을 의지하고 사느냐, 하나님을 의지하느냐”가 십일조에서 나타납니다.
(3) “물질관계를 바로 함”
① 전쟁에 패한 소돔왕이 아브람이 모든 것을 되찾아 돌아올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람에게 재물은 취하고 백성만 보내라고 했습니다.
아브람이 목숨을 걸고 싸웠기 때문에 재물을 취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해서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람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아왔습니다. 아브람이 목숨 걸고 싸운 것은 재물 때문이 아니라 롯과 인민을 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세상의 모든 재물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 물질보다 귀한 것이 몸이고, 몸보다 귀한 것이 영혼이고, 영혼보다 귀한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육신이 최고이고 돈이 우상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때 하나도 못가지고 갑니다. 우리는 나의 가진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가장 큰 분으로 알고 그분을 의지하고 사랑하고 말씀을 따라갈 때 아브람처럼 은혜 베푸시고 물질의 복도 베푸시는 것입니다.
② 아브람은 자기를 따라가서 싸운 자들에게는 분깃을 취하게 해줬습니다(24). 이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아닙니다. 물질 면에 분명해야 합니다. 남에게 손해주지 않아야 하고 빌린 것이 있으면 반드시 갚아야 하고 손해를 입혔으면 보상해야 합니다. 성도는 빚지면 안됩니다. 물질 면에 깨끗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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