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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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1 수요저녁예배 설교 (히브리서 10:19-39 / 성도에게 주는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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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11-01 21:30 조회5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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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FONG7QXgtos?si=kKJHSwdi6GoR9u3e


1.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한 권면(19-25)

2. 배교에 대한 경고(26-31)

3. 인내에 대한 권면(32-39) 


19절

구약시대는 성전을 짓게 하시고 지성소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대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하나님이 지성소에 계신데 들어갈 수 없으니 참 곤란한 일이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영원한 단번 속죄를 이뤄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와 신부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엡 3:12)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게 된 큰 은혜이다. 


20절

"그 길은"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길이다. 지성소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섬기고 은혜 받으라고 열어 놓으신 길이다. 구약시대에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있어서 제사장들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그래서 지성소로 들어가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은 "새로운 길"이라고 했다. 구약시대에는 한번도 열리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다.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은혜와 생명의 길이다.

그리고 "살 길"이라고 했다. 그 길로 들어가면 생명을 얻는다. 하나님을 만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이심으로 우리를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셨는데,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 뭔가? 죄이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원수 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휘장을 가리켜 "그의 육체"라고 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셨다. 예수님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전가시켜서 예수님을 죄로 삼으셨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짊어진 상태를 가리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피흘려 죽어주셨다. 휘장을 가리켜 육체라고 한 것은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죄가 되셔서 십자가에 죽어주심으로 휘장이 찢어진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죄가 다 제거되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중요한 요점은 예수님이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길이 열렸지만 들어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아서 은혜를 받아야 되고 말씀을 들어야 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길이 열렸어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우리가 힘써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21-22절

지성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다 대속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지성소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속주께서 하나님의 집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곳에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신다. 신약 교회는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교회의 통치자가 되신다.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위축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힘 있게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았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 양심까지 다 더려워졌다. 그런데 주님의 피와 진리로 씻음을 받아서 깨끗해지고 정결함을 입게 되었다. 

그래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속이는 마음, 감추는 마음, 술수, 외식의 마음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보시는 것이 온전한 믿음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신 이유는 그가 온전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마음으로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휘장 안, 지성소까지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23절

"약속하신 이"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미쁘신 분, 신실하신 분이시다.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신다. 그러므로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아야 한다. 믿는 도리의 소망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약속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주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의심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24절

자신이 이렇게 믿음에 굳게 서고 흔들리지 말고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할 것이 있다. "서로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라고 했다. 우리가 힘쓰지 않으면, 격려하지 않으면 믿음이 타락한다. 흐르는 물에 배를 띄우면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노를 젓지 않아도 내려가게 되어 있다. 타락한 세상에서 성도가 믿음을 쓰지 않으면 타락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힘을 써야 한다. 혼자 믿음 생활 하겠다는 사람들은 손해를 많이 보는 것이다. 격려를 못해주기 때문이다. 주일날 예배에 빠지고, 기도를 열심히 하던 사람이 못하게 되면 성도 간에 격려하게 된다. 그러면 다시 힘을 내서 믿음을 쓰게 된다. 그런데 혼자 믿음 생활 하는 사람은 격려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시 일어서기가 어렵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 자꾸 세워주고 격려하고 알아주고 인정해줘야 한다. 일하는 사람에게 수고한다고 하고, 고생이 많다고 하고, 고맙다고 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깎아 내리면 안된다. 


25절

말세가 되면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것이 습관이 된다. 그래서 안모여도 되는 줄 안다. 그렇게 되면 믿음 생활이 다 무너지게 된다. 왜 사람들이 모이기를 싫어하게 될까? 첫째, 환난과 핍박이 많아지면 모이지 못하게 된다. 둘째, 게으르고 나태해져서 모이지 못한다. 셋째,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마음대로 하고 싶어한다. 점점 그렇게 되면 열심도 식고 모이지도 않게 되면 모임으로부터만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은혜에게서 멀어진다. 그러면 심각해지는 것이다. 전세계 적인 특징이 유럽은 이것이 일상화되었다. 인구의 80% 정도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거의 교회에는 가지 않는다.

참 신앙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마음에 영접하는 것이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가 없으면 참 신앙이 될 수 없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미국도 유럽처럼 되어가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는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기는 신자라고 생각을 한다. 한국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코로나부터 급격히 많아져서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이것이 얼마나 믿음을 무너뜨리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는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예배 드리기를, 모이기를, 사랑하기를, 섬기기를 권해야 한다. 사람이 말하는 것을 따라가지 말고 성경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주님은 두 세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신앙 생활은 다 모여서 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해야되는 것도 있지만 공예배는 모여서 드려야 한다.

사무엘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서 신앙회복 운동을 경험한다. 에스라 시대에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회개 운동, 부흥 운동을 했다 초대교회 부흥 운동도 날마다 모이기를 힘썼기 때문에 가능했다.

활활 타는 장작불도 하나 따로 꺼내놓으면 금방 불이 꺼진다. 함께 해야 활활 탈 수 있다. 


26-29절

해석이 어려운 부분이다. 믿는 자가 타락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일시적인 타락이냐? 영원한 타락이냐? 여러 해석들이 있다.

요점은 믿다가 타락하면 큰 일 난다는 것이다. 믿다가 배교하면 무서운 벌을 받을 것이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말씀을 배워서 진리를 깨달았다. 그런데 후에 "짐짓 죄를 범한즉" 고의적으로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던 자가 십자가 구속을 거부하면 어떻게 다시 속죄받는 경험을 할 수 있겠는가?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진리를 배웠는데 진리를 부인하고 거부하고 안믿는다.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긴다.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고 다닌다.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짐 짓 죄를 범한다는 것은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죄를 짓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불택자가 짓는 죄로 일반적으로 해석한다. 택한 백성, 구원받은 성도는 일시적으로 넘어질 수 있지만 끝까지 주님을 부인하는 데까지는 가지 않는다. 중간에 회개하고 돌아오게 된다.

배교하면, 은혜와 진리를 저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리로 떨어지면 무서운 심판이 있다.

모세의 율법만 어겨도, 두 세 사람 증인만 있어도 돌로 쳐서 죽였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더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셨다. 끝까지 믿음을 잘 지키고 신앙 생활을 잘 해야 한다. 


30-31절

구속의 진리를 버리고 배교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계속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께 매 맞을 짓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이 참으시고 경고하시다가 내중에는 매를 들고 때리신다. 


32-34절

전날 믿음 생활하면서 편하게 믿음 생활 한 것이 아니다. 핍박을 많이 당하고 고난을 많이 당하고 여러가지 환난과 시험 가운데서 잘 참으면서 믿음을 지켜왔다.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것을 소망하면서 참고 견디면서 믿음을 지켰다. 


35절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환난과 핍박이 오고 위협을 하고 손해가 있더라도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내세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담대함이 없어지면 굴복하게 되어 있다. 


36-37절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환난, 시험 때 믿음을 잘 지키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노력해도 힘써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고난이 계속 될 때 답답하다. 끝까지 견디면 반드시 끝이 온다. 주께서 아침이 오게 하시고 반드시 건져주실 것이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주님의 권고와 돕는 손길이 임한다. 때가 되면 주님이 재림하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이다. 


38절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성도는 믿음을 지키면서 믿음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산다. 권력자들은 권력으로 살지만 성도는 믿음으로 산다. 성도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참 신앙의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어떤 시험과 환난이 오든지 담대한 마음을 갖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말씀대로 살면 반드시 승리하고 하나님의 권고를 입게 되어 있다. 


39절

뒤로 물러가면 멸망한다. 한발 한발 물러가다가 결국 멸망당하게 된다. 지옥을 가리켜 무저갱이라고 한다. 한번 떨어지면 밑바닥이 없기 때문에 계속 떨어진다. 우리는 그런 자가 아니고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이다. 믿음을 잘 지키면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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