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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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6 주일오전예배 설교 (베드로전 1:13-17 / 구원받은 자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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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11-26 16:57 조회4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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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IxWAfvxVI2Y?feature=shared


성도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9절). 구원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었다는 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상 받을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옛날 그대로의 사람이 아닙니다. 새 생명을 얻었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성품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소속이 다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받기 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구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구원받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에 삶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고, 사는 모습이 불신자들과 별로 다르지 않고, 믿기 전에나 믿은 후나 다른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성경은 구원도 중요하다고 하시지만 구원받은 자들의 삶도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 구원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본문에 나와 있는 몇 가지를 살피겠습니다. 


1. 재림을 기다리라

13절에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구약시대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오실 예수님, 메시야를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율법을 많이 알고,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가 되었어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으면 다 헛되고 무익합니다.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최고로 중요한 일은 다시 오실 예수님,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였다고 해도 주님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시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재림 신앙은 최고의 신앙입니다. 재림 신앙은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어떤 자세, 어떤 태도로 재림을 기다려야 할까요?

첫째.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행동과 삶을 결정합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옷을 입고 허리띠를 매는 것을 연상케 합니다. 옷을 입은 다음에 허리를 동여매야 활동하기 편하고 일할 때 힘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는 무엇입니까? 느슨하고, 산만하고, 흐트러져 있는 마음을 꽉 잡아매는 것이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힘쓸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11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기 전날 밤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양고기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에 애굽을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음을 동이고 힘을 써서 새 출발 해야 합니다.

마음의 허리는 무엇으로 동입니까? 에베소서 6:14에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붙들어 매고, 말씀에서 힘과 능력을 얻고, 말씀으로 자기를 단속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것의 반대는 방심 부주의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마음의 허리띠를 매지 못하게 합니다. 즉 마음이 갈라지게 하고, 복잡하게 하고, 산만하게 합니다.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복음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고후 4:4). 예배 시간에 말씀 들을 때 딴생각하게 만들고, 기도하는데 마음이 자꾸 산만해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동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다실 오실 때 가져올 은혜를 기다리면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 “근신하여” 근신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삼가 조심하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자기를 극복하는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물들지 않고 깨어있으라는 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정신이 혼미하고, 자제력을 잃게 됩니다. 로마서 8:13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갈라디아서 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항상 근신하여 자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원수는 자기 자신이며, 신앙생활의 가장 큰 방해물도 자기 자신입니다. 성도는 남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자기를 이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나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때문에 후회하며 자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근신하여 죄를 이기고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힘이 장사였지만 근신하지 못하여 죄를 짓고 눈 뽑히고 원수에게 조롱당하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신하여 자기를 잘 다스리고 자기를 이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고전 9:27에 보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성도가 마음을 동이고 근신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소망은 예수님 재림입니다. 그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바랄지어다” 이 말은 눈을 떼지 말고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성도에게 가장 큰 영광의 순간입니다. 베드로후서 3:10-11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도둑은 예고하지 않고 갑자기 옵니다. 그것처럼 예수님은 알지 못하는 시간에 갑자기 오실 것입니다. 오늘 오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소돔과 고모라가 하늘에서 내린 불로 하늘의 공기와 땅이 다 불에 타는 심판을 받은 것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거룩한 행실은 죄를 떠나 구별되게 사는 것이고,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 지킨 것만 남게 됩니다. 


2. 거룩한 자가 되라

14절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는 불순종의 자식처럼 사욕을 따라 살았으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는 순종하는 자식처럼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전에는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내 욕심대로만 살았습니다. 그때는 육체의 본능대로, 욕심이 이끄는 대로 살면서 죄의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사욕”은 죄의 욕망, 옛사람의 욕망을 가리킵니다. 성도는 사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2-3에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15-16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첫째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우리도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레위기 11:45).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이유는 거룩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거룩한 사람들이 많아질 때 이 세상이 회복되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는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둘째는 18절에 보면 구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아담 때부터 물려받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다. 분리되다. 따로 놓다”라는 의미입니다. 거룩은 모든 죄악 되고 부정한 것으로부터 분리된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이 말은 하나님에게 적용되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하는 물건이나 사람들에게까지 확대 적용되었습니다. 성전도 거룩하고, 성구들도 거룩하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도 거룩하고, 주일도 거룩하고, 성도도 거룩한 자들입니다.

15-16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 구절은 삶의 기준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거룩함의 기준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같을 수는 없으나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자가 되려면 죄를 회개하고 죄를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3. 두려움으로 지내라

17절에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가난하다고 멸시하고 부자라고 존중하지 않습니다. 힘이 없다고 무시하고 힘이 있다고 봐주는 것 아닙니다. 용모나 학벌이나 직분이나 재산을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가장 무섭게 책망한 사람이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할 때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십니다. 마음속에 어떤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십니다(삼상 16:7).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우리 성도가 세상에서 사는 생활은 나그네 생활입니다. 나그네는 잠깐 후에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전심으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에서 잠시 고난을 받더라도 본향에 돌아가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는 부자가 되는 것보다 의롭게 살기를 더 힘써야 합니다. 성도는 행복해지려고 하기보다 거룩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죄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22절에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으로 삼으라고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로마서 12:2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구원받은 것이 확실합니까? 그렇다면 예수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야 합니다. 주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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