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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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6 수요저녁예배 설교 (히브리서 12:1-13 / 예수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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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12-06 21:28 조회4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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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A_ci5QwOZYo?si=lIZdcPcHgR5G6Qmf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을 소개하고 알려주셨다. 12장은 우리의 믿음, 우리의 경주를 말씀한다. 구약시대 성도들이 믿음생활 잘 한 것을 알고만 있지 말고 우리도 달음박질하고 우리도 믿음을 잘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1절

"경주를 하며"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것을 경주하는 것처럼 힘써야 한다고 권면한다. 우리가 선수이고, 실제로 경기하는 자들이고, 믿음의 현장에서 달음박질해야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을 닮아야 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고 말씀대로 만들어지고 죄를 떠나 점점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고 열심을 내면서 내 신앙의 진보를 이루어가야 한다. 우리가 경주자이다. 우리는 관중석에 앉아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누가 잘하나 못하나 판단하고 비난하는 자들이 아니다. 내 자신이 선수이다. 내가 실제로 경기하는 자이다. 이 사실을 내가 먼저 인식하고 신앙의 경주를 힘써 나아가야 하겠다.

어떻게 힘써 나아가야 하나?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이다. 구약시대 믿음생활을 잘한 선배들이 우리의 본보기요 증인이 되어서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경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제거해야 한다. 무거운 것은 온갖 종류의 염려들이다. 세상 살면서 의식주, 돈, 건강에 대한 염려, 세상에 대한 애착과 사랑 등이 우리 믿음에 장애물이 되고 달음박질을 방해한다. 이것을 벗어버려야 한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마 13:22)

씨 뿌리는 비유 가운데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에 대한 내용이다. 세상의 염려 때문에 결실을 못한다. 믿음이 자라나지 못한다. 경주에 비유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염려에 얽매여서 기운을 다 빼앗겨서 믿음을 쓰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를 꽉 붙들고 힘쓰지 못하게 하고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쓰러지게 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믿음생활을 잘하지 못하는가?', '무엇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는가?' 그것이 염려이다. 세상에 붙들려 살고, 게으르든지 그것 때문에 힘쓰지 못하게 하는 그것을 벗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얽매이기 쉬운 죄도 벗어버려야 한다. 얽매인다는 것은 단단히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죄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고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고 좌절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 마음 속에 죄악의 마음, 악한 것이 들어올 때 벗어버려야 한다. 얼른 끊어버리고 잘라내야 몸이 가뿐해지고 경주를 잘 할 수 있다. 경주하려면 먼저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한다. 만약에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버리지 못하면 믿음의 전진이 없고 성장도 없다. 아무것도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준비 과정에서 먼저 할 일이 벗어버리는 것이다.

그 다음에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해야 한다. 벗어버릴 것 벗어버리고 끊어버릴 것 끊은 다음에 뛰어가야 한다. 마라톤처럼 장기적으로 오랫동안 인내하면서 뛰어가야 한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한번 예배 드리고 마는 것이 아니다. 한번 기도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일평생 오랫동안 지속해야 한다. 끝까지 경주하며 달음박질을 해야 한다. 끝까지 주님을 닮아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인내이다. 출발선에서는 다 비슷하다. 그런데 결승선에서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1등, 선두그룹, 꼴지그룹이 다 드러난다. 인내한 사람은 결승선까지 가지만 인내하지 못하는 자는 중간에 다 쓰러진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히 10:36)

믿음생활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뜻을 다 행하고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상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인내이다. 인내가 없으면 믿음생활을 할 수 없다. 참고 또 참고 끝까지 참아야 한다. 계속 참으면서 믿음을 써야 한다. 그렇게 경주해나가면 마침내 결승선에 도달하고 마침내 승리하고 은혜 받게 된다. 인내하는 일은 예수님도 하셨다. 2절에 "십자가를 참으사"라고 했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 전지전능하시다. 그런 예수님은 참으시지 않아도 되지만 참으시고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다. 주님이 참지 않으셨으면,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오셨으면 구속을 이루어질 수 없다. 참으면 경주를 끝까지 잘하는 것이고, 참지 못하면 중간에 기권하고 다 넘어지고 말 것이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 21:19)

인내 없이는 믿음생활이 바로 될 수 없다. 


2절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강조한다. 경주를 잘 하려면 목표를 정해야 한다. 푯대를 바라보고 달음박질을 잘해야 경주를 잘 할 수 있다. 푯대가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완주할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가나안 땅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빙빙 돌았다. 신앙생활의 푯대가 필요한데, 그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처럼 믿음생활을 해야 한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믿음의 주님이시다. 믿음의 창시자, 개척자이시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믿음생활을 하게 만드시는 분이시다.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믿음을 완성시켜 주신다. 믿음을 시작하게 하시고 완성되게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믿음의 근원과 완성이 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만 따라가면서 믿음의 경주를 힘써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푯대이다. 사람, 환경, 문제, 환난, 시험 볼 것 없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힘써 달음박질을 해야 한다.

예수님은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서 십자가를 참으셨다. 십자가는 가장 무서운 고통의 자리이다.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버림 받아서 저주의 죽음을 받으시는 자리이다. 그 십자가를 참으셨다. 죄 없이 누명으 쓰고 죄인이 되셔서 빌라도의 잘못된 재판으로 억울하게 사형 판결을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십자가의 저주, 멸시, 천대, 수치, 아픔을 다 겪으시는 가운데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셨다. 그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도 앞에 있는 상급과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십자가와 같은 아픔과 억울함과 수치를 참아야 한다. 주님은 십자가를 참으셨다.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셨다.

주님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 뺨 맞으시고 침 뱉음 당하시고 비난과 모욕을 당하셨다. 그것 때문에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나쁘고 못해먹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본인이 해야 될 일만 감당하시면서 믿음을 지키셨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만 묵묵히 걸어가셨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십자가 죽음 이후에 삼일만에 부활하시고 사십일 후에 승천하셔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가장 높고 존귀한 자리에 앉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 믿음의 경주를 하면서 예수님만 바라봐야 한다. 다른 것 바라보지 말고 다른 것에 치우치지 말라고 했다. 

"바라보자"는 말 속에는 시선을 고정시키라는 의미가 있다. 주님께 집중하고 주님을 향해 달음박질을 해야 한다.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3~14)

바울은 오직 푯대를 향해서 달려간다고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서 달려간다고 했다. 


3절

피곤하고 낙심되려고 할 때 예수님을 생각하라고 했다. 믿음의 경주를 하려다보면 낙심이 될 때가 있다.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지쳐서 일어나기 어렵고 낙심 되어서 몸이 가라앉아 있다. 아무것도 못하게 생겼다. 그때 경주를 포기해야 하는가? 기권해야 하는가?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고 했다. 예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대적하고 반대하는 일이 많았다. 계속 이어졌다. 한두번 하다가 만 것이 아니다. 몇 사람 하다가 끝난 것이 아니다. 지지한 자들보다 반대자가 훨씬 많았다. 제자들보다 믿지 않고 대적하는 자들이 훨씬 많았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도 피곤하려고 하다가도 힘이 난다. 낙심이 되다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딴 생각하지 말고 그럴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해야 한다. 거역한 일을 참으신 예수님이시다. 우리도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힘써 나아가야 하겠다. 


4절

믿음의 경주를 하면서 싸워야 한다. 무엇과 싸워야 하는가? 죄와 싸워야 한다. 이것은 선한 싸움이다. 죄는 믿음생활의 적이고 하나님의 원수이다. 우리가 늘 죄와 싸우면서 믿음의 달음박질을 한다.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을 한다. 성도가 죄를 지으면 믿음이 무너진다. 신앙의 달음박질이 중단된다. 그러므로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힘쓰고 죄를 이기고 물리쳐야 한다. 

죄와 싸우는데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믿는 자는 죄와 싸우는데, 피흘리기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힘써야 한다. 이렇게 싸우라고 우리에게 권면을 하고 있다. 


5-13절은 주의 사랑의 징계에 대해서 말씀한다.

5절

우리가 믿음생활을 할 때 주님이 보고 계시다가 잘못하면 징계하신다. 달음박질을 하지 않고 잠자고 있고, 나태하게 포기하고 힘쓰지 않으면 책망하신다. 그 길로 가면 안된다고 말씀하시고 바로 잡아 주신다. 징계할 때 두가지를 조심하라고 하셨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주님의 징계를 가볍게 생각하거나 무시하면 안된다. 살다보면 그럴 수 도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러면 돌이키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다. 징계가 올 때 고쳐야 한다. 경히 여기지 말고 얼른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그래야 은혜 가운데로 돌이키고 바로 설 수 있다.

"낙심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작은 징계가 와도 낙심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기운이 빠져서 아무것도 못한다. 꾸지람과 징계 가운데 연단이 되고 힘쓰고 노력해서 자라나야 한다. 어떤 사람은 조금만 잘못해도 하나님이 징계하셔서 무섭다고 말한다. 그래서 믿음생활을 조심해서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것이다. 좋은 것이다. 


6절

징계는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을 채찍질하신다. 사랑하시지 않으면, 아들이 아니면 징계하지 않으신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다. 두 아이가 가게에서 도둑질을 하는데,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징계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잘되게 하려고, 죄짓는 길로 가지 않게 하려고 징계한다. 징계 받을 때마다 섭섭해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징계하시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징계가 올때마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9-10절

하나님이 왜 징계하시는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우리를 잘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믿음생활을 잘하게 하시고 죄를 벗어버리게 하려고 징계하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므로 징계를 감사히 여기면서 믿음으로 잘 받아들여야 한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이고 친아들이 아니라고 했다. 오늘날 사회를 보면 자식을 징계하지 않는 부모들이 참 많다. 나쁜 짓을 하고 죄를 짓는데도 징계하지 않고 오히려 두둔한다. 자기 아들의 편을 들고 선생님을 고발하고 자기 아들이 잘못했는데 남에게 뒤집에 씌우면서 못된 짓 한 아들을 계속 못된 짓하고 살도록 방치한다. 말세이다. 절대로 자식 사랑이 아니다. 자녀를 잘못 키우는 것이다. 부모가 바로되야 교육이 바로 될 수 있는데 잘못되는 것이다. 무조건 때리라는 것이 아니다. 교훈하고 책망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때려서라도 바로 세워야 한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 13:24)

자녀를 사랑한다면 징계를 해야 한다. 징계는 남이 해주지 못한다. 부모가 방치하는데 남이 하면 효과가 없고 갈등만 생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징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도 사랑하셔서 징계하신다. 자녀는 징계 받으면서도 더 감사하고 복종하려고 해야 한다. 


11절

징계 받는 순간은 슬프고 섭섭하고 아프다. 그러나 참고 연단을 잘 통과하면 유익이 아주 많다.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고 복을 받는다. 거룩한 사람이 된다. 


12절

"저는 다리" 영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못하다가 하는 것이다. 믿음의 걸음거리가 온전하지 못하다. 예배 드렸다가 안드렸다, 기도 하다가 안하다가, 성경을 보다가 안보다가 한다.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을 다 세워서 온전해져야 한다.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하라는 것이다.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 하면 우리 믿음이 자라나고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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