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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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2 수요예배 설교(히브리서 3장 1-6절 /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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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3-08-02 21:26 조회5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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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45PvXstP6qU


1. 우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심(1-2)

2. 모세보다 더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심(3-6상)

3.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님(6하) 


1-2장에서는 예수님이 천사보다 뛰어나신 것을, 3장에서는 예수님이 모세보다 위대하심을 증거하는 내용이다. 


1절

"그러므로" 이 말은 2장에 나오는 내용과 연결되는 것인데,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십자가 죽음으로 마귀를 멸하고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종살이하는 자들을 다 풀어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누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가?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서이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셨다. 때가 되매 우리를 불러서 예수님을 믿게 해주셨다.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입혀서 모든 죄를 사함받고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도 아니고 우리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 15:16)

이것이 은혜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주시고 세워주셨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딤전 6:11)

택함 받아서 구원받은 성도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부름 받았다는 것이 은혜이고 복이다.

"거룩한 형제들아" 구별되었다는 의미이다. 세상에서 불러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거룩하게 살기를 기대하고 원하신다.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거룩한 곳이라는 뜻이다. 믿는 자들을 가리켜 성도라고 부른다. 거룩한 무리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구별하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거룩하게 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를 가리켜 형제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아서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한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형제가 되었다. 이런 우리가 누구를 생각해야 하는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다.

믿는 도리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도리이다. 믿음 생활은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연구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성경 말씀에 알려주셨다. 그 도리를 다 가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 4:14)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히 10:23)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말씀, 진리를 잘 배워서 굳게 잡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믿음생활을 잘 할 수 있다. 

예수님을 사도라고 불렀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셨다. 주님은 믿는 도리의 본보기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믿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믿음생활을 잘 하려면 믿는 도리의 사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붙잡아야 한다.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불렀다. 예수님을 사도와 대제사장이라고 부른 말씀은 히브리서에 밖에 없다. 예수님이 백성들을 대표해서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속죄 제사를 드렸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 특별히 하는 일이 있었는데, 대속죄일에 속죄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모든 백성을 위해 속죄의식을 행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제물로 삼아 자신의 피로 속죄를 완성하셨다. 그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1절을 다같이 다시 읽어보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

한절인데 아주 중요한 말씀들이 많이 들어있다. 가장 강조하는 것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가?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가? 이다. 공산주의 사상만 가지고 공산주의자이다. 불신앙적인 생각만 늘 하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무신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무신론자이다. 돈 생각만 늘 하면 돈이 우상이 된 사람이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가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걸려 있다. 생각하는 것이 점점 그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다. 예수님 생각을 많이 하면 믿음생활을 잘 할 수 있다. 주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이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게 된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 마음에 나쁜 생각을 자꾸 집어 넣는다.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 생각을 마귀가 넣어주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마귀가 넣어주었다. 생각이 중요하기 때문에 생각을 잘 관리하고 생각을 바르게 해야 한다.

예수를 생각해야 한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하늘 보좌 영광 가운데 계신 분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사람이 되셔서, 그것도 사람의 종이 되셔서 일평생 섬기면서 사셨다. 그런 예수님을 생각하면 머리가 숙여지고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모든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속죄를 완성하셨다. 부활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늘 기도하고 계신다. 

깊이 생각하라는 것은 집중하고 몰입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한번 생각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루에 얼마나 생각하는가? 생각하는 것보다 생각하지 못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예수님 말고 딴 생각하면서 살 때가 더 많다. 그런 우리를 향해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속에는 '사랑하라'는 의미가 있다. 사랑해야 생각할 수 있지, 사랑하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깊이 생각하고, 종일 생각하게 된다. 자다가도 생각하고, 꿈도 꾼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는다. 관심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생각하겠는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믿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우선 은혜를 받는다. 은혜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저절로 은혜 속에 들어가서 머무는 사람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우리가 변한다. 우리 자신이 바뀐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생활이 점점 달라진다. 은혜 받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니까 당연히 변화되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렇게 살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환난과 핍박을 이기는 승리의 사람이 된다. 히브리서는 유대인 가운데 예수 믿고 돌아온 자들을 위해 기록했다. 이들은 구약은 잘 알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몰랐다. 예수 믿는 유대인들은 유대교 사람들에게 박해를 많이 받았다.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바로 알게 만들어서 흔들리지 말고 믿음생활 잘 하도록 하기 위해 히브리서를 기록한 것이다. 예수를 깊이 알면 환난과 시험을 이길 수 있게 된다. 환난과 시험 중에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저절로 시험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이 자체를 잊어버리면 안된다.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못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도 생각하지 않고 묵상하지 않고 은혜를 주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생각해야 내 것이 된다. 내 안에 불필요한 생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마귀가 주는 의심과 시기와 갈등과 염려와 근심과 세상 걱정들,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있다. 그런 것은 버려도 괜찮다. 빨리 버릴수록 좋다. 그리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2절

예수님을 세우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는 도리의 사도로 세우시고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구속사역을 이루게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신실하셨다. 충성하셨다는 의미이다. 모세도 충성되게, 신실하게 맡은 일을 잘 감당했다. 예수님도 모세처럼 신실하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하셨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일을 맡았으면 충성해야 한다. 충성은 신실한 것이다. 

바울은 모세와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말하는데, 모세는 어떻게 충성했는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민 12:7)

하나님께서 모세를 인정해주셨다. 맡긴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셨다. 그 모세처럼 예수님도 신실하시고 충성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온 집에서"라고 했는데,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을 집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우리도 가족을 집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하나님의 온 집은 교회를 의미하기도 하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맡아서 인도하시는 일에 신실하시고 충성했다는 것이다. 


3-4절

2절에서는 모세와 예수님이 신실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했다. 그런데 3절에서는 예수님이 모세보다 더 뛰어나고 영광을 받으실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구약시대 가장 위대한 인물로 모세를 꼽았다. 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대화했고, 율법과 십계명을 직접 받은 자이다. 성막도 건축했다. 그러므로 아주 위대하게 생각을 했다. 그런데 모세에 대해서 잘 아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와 비교하면서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설명하는데,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고 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 3:4)

만물이 귀한가? 만물을 귀하신 하나님이 귀한가? 하나님이 귀하시다. 그것처럼 집보다 집을 지은 분이 더 귀하다. 모세는 집과 같은 자였다면, 예수님은 집을 지으신 분이다. 누가 더 귀한 분이가? 당연히 예수님이다. 모세가 위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집을 지은 분이시다. 그러므로 모세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더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존경해야 될 분이시다. 

저절로 생겨난 집은 없다. 흙덩이가 점점 바람에 불려서 덩어리가 되더니 돌맹이랑 섞여서 집이 만들어졌다면 정상적인 생각인가? 말도 안되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만물이 미생물에서 진화가 되어서 고등동물이 되고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것은 거짓이고 가설일 뿐이다. 한 사람의 주장인데 맞지도 않는 허튼 주장이다.

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구약의 유대인들도 다 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위대함은 모르기 때문에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5절

또 한가지 예를 든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 신실했다. 모세는 먼 훗날 그리스도가 오셔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충성하셨다. 종이 높은가? 아들이 높은가? 종이 아무리 능력이 많고 지혜가 많아도 상속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은 아들이시기에 종인 모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충성하셨다. 아들의 권세를 내세우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고 믿는 도리의 사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 다 충성하셨다.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려 택한 백성을 구속하셨다. 한가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으시고 충성하셨다.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나아가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그리스도께서 장차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고 온 성도를 들려 올려 영광 가운데 참여하게 하실 일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환난을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는 단어 하나 하나가 깊이가 있고 설명을 듣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짧은 구절이지만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요절은 1절인데 핵심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을 생각한다.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위대하고 훌륭하고 뛰어나시고 더 충성하시고 영광을 누릴 분이시다.

이 예수님을 생각하면 어떤 환난과 시험도 다 이길 수 있다. 환난을 생각하지 말고, 핍박을 고민하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생각하면서 믿음을 잘 지켜야 한다. 우리도 이 말씀대로 믿음에 승리하는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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