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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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주일오전예배 설교(사 29:9-16 / 슬프다 아리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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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7-14 16:55 조회3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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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MIZ-laW-AVA?si=Jq6XPce2i2NQHkOL


1. 슬프다 아리엘이여 

1절에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아리”는 사자,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리엘은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도시” “하나님의 제단”이라는 의미인데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으로 하나님이 아끼고 사랑하는 귀한 성읍입니다.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후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 곧 여부스 사람들을 물리치고 그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승리의 산성이요 거룩한 제단과 같은 성읍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왜 슬픈 성읍이 되었습니까?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이스라엘은 해마다 예루살렘에 모여서 절기를 지켰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 예루살렘에 모여서 절기를 지켰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면 제사와 절기는 형식뿐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12-13에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이것은 우리도 점검해야 할 일입니다. 혹 우리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서 형식적으로만 예배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2절에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아리엘이 왜 슬픈지 그 이유가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아리엘을 괴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징벌하시면 예루살렘이 고통을 당할 것이므로 슬프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징계하기로 작정하시고 앗수르 군대를 보내 공격하게 하셨습니다.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는 것은 제단에 불을 피우면 불이 제물을 사르는 것처럼 예루살렘을 불로 사르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길 때는 예루살렘이 거룩한 성읍이요, 영광스러운 성읍이요, 승리의 성읍이었으나,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고 믿음이 타락된 다음에는 불사름을 당하는 슬픈 성읍이 된다는 것입니다.

3-4절에 대적들이 예루살렘을 사면으로 둘러싸고 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대를 높이 쌓고 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의 산혜립이 침공하여 유다 나라를 초토화시켰으며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했습니다. 대적들에게 둘러싸인 예루살렘 거민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지고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낮아져서 티끌같이 낮아지고 그 말소리가 땅에서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이 티끌에까지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슬퍼하고 애곡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2. 대적들을 징벌하심

앗수르 군대가 침략해 왔을 때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을 찾고 전심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5-6절에 대적 앗수르 군대를 하나님께서 다 날려버리겠다고 하십니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날려 가는 겨 같으리니”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었던 앗수르 군대도 하나님 앞에서는 하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를 징벌하시는 일이 갑작스러운 것이기에 우레, 지진, 큰소리, 회오리바람, 폭풍, 맹렬한 불꽃으로 징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히스기야 왕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을 하루아침에 멸망시켰습니다.

7-8절에 보면 앗수르 군사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노략물을 취하지만 그것이 꿈 같이, 밤의 환상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비유를 드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굶주린 자가 꿈속에서 음식을 먹어도 깨고 나면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물을 많이 마셨을지라도 깨고 나면 여전히 갈증이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즉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침략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악한 세상이 교회를 대적하고 성도를 핍박하지만 그들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3. 아리엘의 영적 상태

히스기야의 기도로 앗수르는 물리쳤으나 예루살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는 너무나 한심했습니다. 


첫째. 취하여 비틀거림. 9절에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예루살렘 거민들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을 보고 놀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징계를 받아 맹인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의심하고 믿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 맹인이 됩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이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목적과 방향을 잃고 비틀거립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도 아닌데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마음이 혼미해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깊이 잠들어 있음. 10절에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예루살렘 백성들이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부어 주셔서 그들의 눈을 감기셨기 때문입니다. “잠들게 하는 영”은 세상 신을 가리킵니다. 세상 신이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여 심령을 어둡게 합니다. 고린도후서 4:4에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선지자와 선견자는 백성들의 눈과 머리 역할을 합니다. 바로 보고, 바로 깨닫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눈이 감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선견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전해 주시는 데도 예루살렘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지 않고 따르지 않으니 더 이상 선지자들과 선견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백성들은 맹인이 되고 덮은 머리가 되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예루살렘 백성들이 비틀거리는 것입니다.

11-12절에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 “계시”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 즉 성경 말씀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읽어보라고 하면 봉했으므로 알지 못한다고 하고, 또 글 모르는 자에게 읽어보라고 하면 나는 글을 모른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린 핑계를 대면서 말씀을 읽으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성경책을 덮어버리고 말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계시의 말씀을 읽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사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님의 계시 말씀인 성경을 연구하여 바른 진리를 찾아야 교회가 살고 나라도 살 수 있습니다.


셋째. 입술로는 공경하나 마음은 떠남. 13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진실한 말이란 마음으로부터 나올 때 가능합니다. 신앙 고백은 마음으로 믿는 것을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는 것도 마음에 있는 감사를 입술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백성들을 향해 탄식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난 것입니다.

그들은 절기도 지키고 제사도 드렸으나 마음은 없었습니다. 율법을 배웠으나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과 말이 일치하는 신앙을 원하십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어기면서도 장로의 유전 같은 것을 중히 여겨 지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서 정성 없이 섬기는 것은 성전 마당만 밟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하셨습니다(요 4:24). 

14절에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침략보다 더 기이한 일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가올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말씀을 떠나서 자기 지혜, 자기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참된 지혜와 총명이 없어지고 신령한 눈이 어두워져서 흑암에서 방황하는 시대입니다.


넷째. 자기 계획을 숨기려 함. 15절에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입니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악한 일을 계획하고 행동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십니다. 예레미야 17:10에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16절). 그것이 ‘패역’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진흙을 빚어서 토기를 만드는 토기장이와 같이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습니다. 그럼에도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짓지 않았다고 하며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피하여 자기의 악을 계획하고 일을 꾸미며 아무리 은밀한 곳에 숨어서 일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다 감찰하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 살핍시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원하십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실 때 즉시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영적인 잠자는 자리에서 깨어나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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