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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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9 주일오전예배 설교(요 13:1-6 /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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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9-29 14:23 조회1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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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3JAITL2_GIk?si=R2F9gKB0Ue6rBXLI


요한일서 4:7-8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이 큰 사랑을 받은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갈 때가 된 것을 아셨습니다(1절, 3절). 이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심

1절에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은 예수님 옆에 있는 제자들과 예수님 믿는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고 은혜와 사랑으로 부르신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끝까지 지속되는 사랑입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사람의 사랑도 변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변함이 없고 주님의 사랑도 변함이 없습니다. 참사랑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이 끝까지 가지 못하는 것은 여러 조건을 달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전에도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 주시고 가려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한결같으면 좋겠습니다. 조건을 떠나서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신앙생활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사랑이 식으면 신앙생활이 형식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사랑이 식으면 허물이 크게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2. 배신당할 것을 알면서 사랑하심

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시험에 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10절에 보면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으며 죄 씻음받지 못한 자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11절에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사랑할 가치가 없는 사람임을 아시면서도 사랑하셨습니다. 가룟 유다 뿐 아닙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할 것도 아셨습니다(요 13:38). 제자들이 도망칠 것도 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배신할 것을 모를 때는 사랑하기 쉽지만 배신할 것을 알면서 사랑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나를 욕하고 다니는 사람, 내 뒤에서 나를 흉보는 사람, 겉으로는 사랑하는 척하면서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런 사람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은 아름답고 위대합니다. 주님 사랑의 최고 절정은 십자가입니다. 요한일서 3:16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잘하려면 무엇보다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식어지면 아주 위험합니다. 시편 109:4-5에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다윗은 사울을 사랑하고 도와주었으나 사울은 다윗을 대적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5:46-47에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주님은 남들보다 더 나은 사랑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까지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3.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

4-5절에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주님은 사랑을 몸소 실천하여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성경에 제자들이 주님의 발을 씻어드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남의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이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종이 하는 그런 일을 직접 하셨습니다. 종이 이런 일을 한다면 당연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섬김을 받아야 할 주님이 섬기셨습니다. 대접을 받으셔야 할 분이 먼저 대접하셨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일입니다. 14절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진정한 사랑은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주님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15절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후 너희도 가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섬겨주셨고, 나의 발을 씻어주셨고, 나의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 사랑과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큰 이적을 행하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겨야 하는 것 아닙니다. 사랑을 실천하면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히려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요한일서 4:11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신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신자들이 사랑한다 해도 그것은 특별한 삶이 아닙니다. 당연하고 마땅합니다. 오히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막 3:17에 보면 사랑의 사도로 불리는 사도 요한은 처음에 주님으로부터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우뢰처럼 사납고 거칠고 분노하고 불같이 소리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요한이 주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점차 변하여 사랑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사랑합시다.


4. 새 계명을 주심

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새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말씀은 구약부터 있었던 말씀인데 왜 새 계명이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참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본질적인 면에서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같이 그렇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새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내 느낌이나 감정을 초월해서 이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35절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31에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하면 그 말씀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고, 우리는 결국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요한복음 15:8에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너희는 내 제자 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열매는 성령의 열매를 가리킵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입니다. 주님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내 안에 거하면 당연히 사랑할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주님의 제자로 인정할 것입니다. 나부터 사랑하고, 가까운 이웃부터 사랑합시다. C. 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개개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인류를 사랑한다는 거창한 타이틀을 좋아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구호가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원수 사랑보다 어려운 것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큰 잘못을 한 원수는 눈 한번 꼭 감고 용서하고 잊어버리면 됩니다. 그러나 내 옆에 있는 가족을 사랑하고, 일가친척을 사랑하고, 교인들을 사랑하고, 직장 동료를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크고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참 사랑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랑할 차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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