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목사님설교

20241110 주일오전예배 설교 (마 3:13-17 / 세례의 의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11-10 15:10 조회73회 댓글0건

본문

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mtYzrKw09R0?si=HTUY13E2I3SlSyXv


오늘은 세례식이 있습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것을 인치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세례받으신 내용을 살피겠습니다.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 예수님은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의 세례는 죄를 씻기 위한 회개의 세례인데 예수님은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분이 아니라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고 말합니다. 

11절에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 씻음을 받고 구원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령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불을 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몸이 뜨거워지고, 사람들이 쓰러지고, 땅바닥에 나뒹구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때 몸이 뜨거워지고, 뒤로 쓰러지고, 땅바닥에 나뒹구는 그런 사건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성경에 그런 것이 기록된 곳도 없습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받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시고 구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1. 예수님이 세례받으신 이유

13-14절에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여기서도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세례받으러 오신 것이 너무나 당황스럽고 죄송스러워서 사양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죄 없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왜 세례를 받으려고 오셨는지 알 수 없어서 사양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까? 15절에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죄가 있어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의를 이루기 위해서 세례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받는 것이 왜 의를 이루는 것이 됩니까?

첫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택한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일을 하려면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져야 합니다. 죄인과 같아지고 죄인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들과 하나가 되어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에는 죽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것은 택한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는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공개적으로 선포하고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공적으로 시작하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거룩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므로 의를 이루고 택한 백성의 죄를 대속하여 의롭게 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에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여기서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요한을 택해서 선지자로 세우시고 세례를 주라고 하셨음으로 그 직분을 존중해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받은 것은 사람에게 복종함이 아니고 하나님께 복종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세례받으신 후 그 위에 성령이 머물렀습니다. 그것을 보고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했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무한하신 겸손입니다. 보통은 제자가 선생에게 배웁니다. 그런데 선생이 제자에게 배우면 참으로 겸손한 일입니다. 주인이 종을 섬기는 것 역시 겸손한 일입니다. 하나님이시고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예수님이 죄인인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은 큰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죄 없는 분이 죄인인 요한에게 찾아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고 겸손의 본을 보이고 순종의 본을 보이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야 너 이리 와서 나에게 세례를 베풀어라” 이렇게 말하지 않고 “이제 허락하라”고 했습니다. 사양하고 거절하는 요한에게 허락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지극히 겸손한 모습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세례요한이 끝까지 못 한다고 사양하는 것이 겸손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순종입니다.


2. 세례의 의미

첫째, 죄 씻음을 받았다는 표입니다. 우리의 죄는 어떻게 씻음을 받습니까? 세례받을 때 죄를 씻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을 때 십자가의 피로 죄 씻음을 받습니다.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1:7에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세례는 예수님 믿고 예수님 피로 죄 씻음을 받은 것을 인치는 것입니다. 세례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 속죄의 은혜를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둘째,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표입니다. 세례는 구약의 할례에서 왔습니다. 창세기 17:7-8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습니다. 그 내용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심히 번성하게 해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어 영원히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언약의 표로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할례에서 신약의 세례가 나왔습니다. 세례도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 백성이라는 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늘나라를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것을 세례로 표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하는 표입니다. 로마서 6:3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골로새서 2:12에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고” 세례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표이며 예수님의 죽음이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살고, 내 고집대로 살고, 내 속에서 일어나는 욕망을 따라 살고, 죄의 지배를 받으며 살던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죽은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죄에 대해서는 반응도 할 수 없고 감각도 없다는 것입니다. 죄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넷째.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하는 표입니다. 로마서 6:5에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한 성도는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다시 사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죄와 상관이 없는 새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각오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3. 세례받은 후 임한 은혜

16-17절에 세례받으신 예수님께 특별한 은혜가 임했습니다.

첫째, 16절에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자마자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문이 열리고 은혜의 문이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주님의 세례와 함께 하늘이 열린 것은 천국이 임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하늘이 열립니다. 우리에게 하늘이 열리고 그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면 세상도 열립니다. 하늘이 막히면 세상도 막힙니다. 하늘이 열린 사람은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스데반이 죽기 직전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사도행전 7:56). 스데반은 죽음을 눈앞에 두었으나 열린 하늘을 보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는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 감격스러워했습니다. 예배하는 시간마다 하늘 문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이 비둘기같이 생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비둘기같이 온유하고 겸손하시고 깨끗하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비둘기가 제물로 바쳐지는 새인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바쳐질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례받고 물에서 올라오는 예수님께 성령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였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세례는 성령의 세례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어주실 성령의 충만함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받은 이후부터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 이제 그 사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선포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적인 일을 시작하실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메시야의 일을 시작하실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택한 백성들을 구원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례받은 것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 역시 하나님의 자녀 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고백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기뻐하실 수 있도록 믿음으로 살면서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이미 세례를 받은 분들이나 앞으로 세례를 받을 분들이나 세례에 이러한 의미가 있는 것을 알고 세례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