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9 주일오전예배 설교 (시편 18:1-3 /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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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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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yDdGWNIADaA?si=KSjNEoAXHVNNVDbG
(설교 요약본)
오늘 우리는 다윗의 깊은 신앙 고백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시편 18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이 말씀은 다윗의 일평생 신앙 고백이요, 찬양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평안할 때 나온 말이 아니라,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다니던 고난의 시기에 터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한 순간마다 하나님을 향해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라고 부르며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랑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함’인데, ‘깊이 사랑하다’, ‘긍휼히 여기다’, ‘자비롭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갖는 사랑, 특히 부모가 자녀를 향한 사랑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단어를 거꾸로 하나님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복종이나 의무감이 아닌,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에서 나온 믿음의 표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무서워서 복종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 안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도 『기독교 강요』에서 “신앙이란 단지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데서 비롯된 사랑과 경외의 실천”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적인 이해를 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또한 하나님을 가리켜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라고 부릅니다. 여기 ‘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체크’이며, 성경 전체에서 본문에서 단 한 번만 사용된 표현입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유일한 힘이심을 확고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의지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돈이나 인간관계, 경험, 감정에 기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합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연약하고 무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힘이십니다.”
이 고백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전적 타락한 인간이 유일하게 붙들 수 있는 소망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뿐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중심으로 세 가지 은혜의 진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인격적이며 반드시 표현되어야 합니다 (1절)
다윗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대부분의 시편이 “도와주소서”, “구원하소서”로 시작되지만, 시편 18편은 사랑의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이 사랑의 고백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믿음의 응답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를 붙들듯, 다윗은 하나님을 그렇게 붙들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과 예배만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의 반응을 원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를 즐거워하며, 사랑으로 반응하기를 원하십니다.
신명기 6장 5절은 말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신약에서도 반복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서 이 말씀을 율법 중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드리고 있을까요? 감사와 간구는 자주 하지만, 사랑의 고백은 인색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을 표현하길 기뻐하십니다. 부모도 자녀의 사랑 고백에 기쁨을 느끼고, 부부도 사랑의 말에 위로받듯이,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가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길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진리’는 바른 교리와 말씀 위에 선 예배라면, ‘영’은 인격과 감정과 중심이 담긴 예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없이 드리는 예배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전적인 피난처가 되십니다 (2절)
다윗은 하나님을 일곱 가지 상징으로 표현합니다.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이, 내가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
이는 다윗의 실제 고난 경험에서 우러나온 고백입니다. 광야에서 동굴에 숨어 도망 다닐 때,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주셨던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한 것입니다.
각 표현은 하나님이 얼마나 철저히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① 반석: 흔들리지 않는 신뢰의 기초, 하나님의 불변성을 상징합니다.
② 요새: 높고 견고한 방어구조물로, 외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③ 건지시는 이(팔라트): 탈출시켜주시는, 적극적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④ 피할 바위: 하나님 안에 숨을 수 있다는 의지적 신뢰를 나타냅니다.
⑤ 방패: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전신을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⑥ 구원의 뿔: 권세와 능력의 상징으로,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⑦ 산성: 마지막 보루, 절대적인 안전의 공간이신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다윗은 이 모든 표현 앞에 “나의”라고 고백합니다. 2절 안에만 여덟 번이나 반복되는 “나의”라는 말은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관계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모세에게도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 하셨고, 다윗은 그 언약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도 삶의 고난 속에서 인간적인 도움 대신,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찬송받으실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3절)
다윗은 말합니다.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하나님은 찬송받으시기에 마땅하신 분입니다.
‘할랄’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밝게 비추다, 자랑하다, 찬양하다의 뜻이며,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찬양받을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본래 영광스러우신 분이시며, 우리는 단지 그분께 마땅히 드려야 할 반응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뢰리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부르짖음입니다. 다윗은 기도보다 행동이 앞서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로 인해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확신에 찬 선포를 합니다.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이것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확신입니다.
다윗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바울도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하늘에 앉히셨느니라” (엡 2:4-6)
과거적 구원(중생, 칭의), 현재적 구원(성화), 미래적 구원(영화)을 포함한 완전한 구원을 하나님은 이루실 분이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왕궁이 아닌 광야에서, 고난 중에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이 고백을 오늘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고통스러운 현실 가운데서도, 주님을 나의 반석이요, 요새요, 피할 바위요, 방패로 신뢰하며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찬송받으실 유일하신 분이시며, 우리가 간절히 아뢸 때 구원의 손길로 응답하실 분이십니다. 오늘도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찬양하며 살아가는 복 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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